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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철 Apr 09. 2019

"기독교 영성 이야기", 이후정

한줄요약 : 영성이란 신비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이후정, 기독교 영성 이야기 


1. '영성'이라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게 됨에 있어서 

저자의 책을 보면 처음부터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 말은 요즘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가는 시대에서 '영성'을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영성'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 이후정, "기독교 영성 이야기" 중에서 p.15


분명, 현대사회처럼 과학적이고 물질적인 관점에서 영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야 영성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심리적으로 파악한다거나, 단순히 신앙 없이 정신분석적인 해석을 통한다면 신비성이 전혀 없는 한 개인의 망상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성이라는 주제로 새롭게 고찰하고자 하는 이 책은 의미성을 담지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딱히 의미가 없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속화되어가는 종교로서가 아니라 예언자적 종교로서 나타나기 위해서는 영성의 의미는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초대교회부터 현대까지 유명한 영성가들의 이야기를 풀면서 다시금 영성의 의미를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문체나 문장의 간결성은 탁월하다. 어려운 부분이라던가 난해한 단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이야기를 하는 문체를 사용함으로써 부담감을 덜어주고 있다. 


2. "기독교 영성 이야기"의 주요 내용

많은 영성가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이 좋은 건 직접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을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책을 보면서 느꼈던 점과 전체적으로 요약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2.1. 영성가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초대부터 현대까지 나오는 영성가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내면이든 외면이든 분명한 기준점이 있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사도전승'을 중시하면서도 역사적으로 발전하면서 정경의 탄생과 더불어 성경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과학의 발전과 물질주의적 세계관이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이러한 영성의 의미는 매우 희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이끈 많은 영성가는 '성경'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쉽게 쓴"이라는 시리즈가 몇 있는데 정말 괜찮다.

문자적인 의미로서 성경을 항상 옆에 두고 살았다는 말도 되지만, 성경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도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삶을 살라고 했는 지를 성경을 통해서 검증하며 그 말대로 살려고 하는 노력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2. 내면적이든, 외면적이든 성화를 통해서

2.2.1. 내면을 중시하는 신비주의적 영성 

흔히 수도원 영성이라던가, 사막 교부라던가, 마키리우스와 같은 영성가들은 일반적으로 신비주의라고 불린다. 


신비주의는 대부분 성령체험을 중시 여긴다. 그런 점에서 내면적인 영성을 추구하는 거로 볼 수 있다.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사막으로든 동굴로 들어가면서 초월자와의 직접적인 연결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은 세상 속에서 탐구하여 찾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을 떠나 세상에서 부와 권세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임했던 부름은 세상이 아니라 광야의 사막 속에 들어가 선현들이 찾았던 지고한 영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었습니다.
 - 이후정, "기독교 영성 이야기" 중에서 - p.70


신비주의는 개인의 변화를 중시한다. 신비가 경험되고 그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때 참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변하고 싶지 않아도 영적 감동으로 인해서 개인이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2.2.2. 사회로 들어가는 성화 

마찬가지로 개인주의적인 것을 넘어서 사회로 들어가는 영성가들도 있다. 흔히 웨슬리는 복음의 사회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복음이라는 것은 개인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실천적인 모습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존 웨슬리는 그리스도교 복음이 단지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된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 이후정, "기독교 영성 이야기" 중에서 - p.308


그야말로 영성이 이끄는 삶은 공동체를 연합시키는 것이다. 개인 내면에 치중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성가들은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흔히 마르크스적 비판, 종교가 아편이라는 주장은 재고찰 되어야 한다. 종교는 마냥 세속으로서의 변화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요소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필요로서 영성은 중요하게 된다. 


3. 리포트에는 쓰지 못한 이야기

사실 과제로 읽은 책이다. 곧, 과제를 내준 주제로서 긍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리포트에는 좋은 이야기밖에 쓸 수 없게 된다. 사실 거기에 쓰지 못한 이야기는 많다. 예를 들어 영성이라는 것을 보면 그들은 전부 개인적인, 아니면 자발적인 모습에서 행하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제는 '영성'을 주제로 수련을 하는 과목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렇다는 건 돈을 내고 배우는 점이고, 돈을 내고 학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영성을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제성이 있는 영성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교회에서 사역자 원하고, 사역자도 마찬가지로 교회를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어떤 교회를 갈지를 판단하는 것은 학생의 몫이다. 그렇기에 교회에서 영성이 부족한, 너무 세속적인 신학생이라는 이유로 영성을 수련할 과목을 만들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영성 수련이라는 과목에서 이 책을 추천한 건 그야말로 자기모순이다. 분명 책을 통해서 영성의 중요성을 설파하려고 했겠지만 이들이 보인 모습은 강요된 환경 속에서 거부하는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내 영성이 자벌적이지 않은 돈 주고 배우는 과목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참으로 의문이다. 




평점 : ★★★ (과제만 아니면 좋게 봤을 텐데, 편견이 이렇게나 무섭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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