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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철 May 10. 2019

"인간 본성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

한줄요약 : 인간 본성은 생물학적 진화과정으로 환원된다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책 표지가 좀 멋있다. 들고 다니면서 보면 간지 철철


책 목차

1장 인간 본성의 딜레마

2장 유전적 진화 

3장 준비된 학습

4장 문화적 진화 

5장 공격성 

6장 성 

7장 이타주의

8장 종교

9장 희망 


1. 제목에 비해서는 읽기 쉬운 책 

인간 본성에 대하여라는 어려운 제목에 비해서 읽기에는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때에 따라서 느끼기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책 보다 훨씬 초심자를 위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특히나 리처드 도킨스는 오히려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려고 하다 보니 더 알 수 없어지는 느낌이 있는데, 에드워드 윌슨은 그러한 서술 방식보다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하기에 사실에 대해서는 명확하다. 


번역을 잘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문체가 매끄럽다는 점에 있어서 충분히 입문을 하기에도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지식의 대통합, 통섭'이라는 책과 비교를 했을 때에도 전문성은 양적인 측면에서 부족할지는 모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책이 얇다는 것은 그만큼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무엇보다 소제목으로 분류되는 내용에 있어서 그 명확함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유전자로 시작해서 점차 사회적으로 확장되어 설명하는 것을 본다면 책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는 연습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에드워드 윌슨의 책을 볼 때는 하나의 큰 틀을 파악하고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문화적으로 점차 확대해서 설명한다는 점에서, 개인이라는 측면에서 인간 집단을 설명하고자 하는 부분을 본다면 단순히 유전자라는 차원의 설명이 어떻게 집단으로 확산되는가를 파악해야 이해할 수 있다. 


2. "인간 본성에 대하여"의 주요 내용 

2.1. 도대체 인간 본성이 뭔데 

역사와 더불어서 철학적 주제로서 인간 본성은 항상 이야기가 되어왔다. 인간 본성은 무엇이며, 어떤 것을 근거로 하는가라는 주제는 항상 질문이 되어왔고, 그런 점에서 항상 대답되어 왔다. 하지만 칼 야스퍼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수학적, 과학적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학한 반면에 철학적인 대답은 항상 어떤 이야기를 하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답이라고 할 수 있는 명확한 것이 없다. 


흔히 말하면 인간 본성에 대해서 다루는 주제는 인문학에 가깝다. 따라서 사회생물학을 접하는 공대생이나, 이과생들은 때로 사회생물학적 관점의 접근이 지극히 인문학적이라서 공감되지 않는다고 하기도 한다. 

맞다 편견 


에드워드 윌슨이 말하고 있는 인간 본성을 탐구하기 위해서 사회생물학이라는 관점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면서 그것을 얼마나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야스퍼스의 비판에 따라 명확하지 않은 것은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생물학이 인간 본성을 푸는 열쇠이기 때문에, 사회 과학자들은 빠르게 옥죄어 드는 생물학 원리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는 사회 과학이 훨씬 더 풍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중에서 - p.37


따라서 윌슨이 주장하고 있는 사회 과학과 생물학의 차이는 명확하다. 그것을 해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내용을 다룰 지에 대해서는 사회 과학, 인문학의 잠재력을 충분히 긍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원인과 근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생물학을 중점으로 한다. 


이전 윌슨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모든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통섭'은 여전히 생물학적인 관점으로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 과학자들은 생물학적인 개념을 전부 흡수하고 나서야 그것들을 넘어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 현상은 생물학적으로 서술될 수 있다. 


사회생물학의 새로운 점은 기존의 행동학과 심리학 지식 속에서 사회 조직에 관련된 주요 사실들을 추출하고, 그 사실들을 개체군 수준에서 연구된 생태학 및 유전학을 토대로 재구성하여, 사회 집단이 진화를 통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를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다.
-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중에서 - p.41


리처드 도킨스와 더불어서 유전학을 중시하는 사회생물학은 유전학의 위치를 더욱 확장시킨다. 그것은 사회 집단의 진화로서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았다는 담론이다. 어떤 문화적 요소를 지니고 있던 개체는 생존에 있어서 다른 개체보다 더욱 유리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2.2.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이타주의적 인간

인류의 한 종이 종교적 의식, 문화를 통해서 하나로 밀집하여 생존에 큰 영향력을 주었기 때문에 그 종교적인 문화성이 유전되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이러한 사회생물학적 관점을 가지고 문화를 비롯하여 성, 이타주의, 종교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극단적인 형태의 자기희생에 매료된다. 하지만 포유류의 자기희생에는 그런 감정을 느끼겠지만 개미의 자기희생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중에서 - p.186


인간이 이타주의로 변화하면서도 그 안에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타주의의 근본적인 이유가 이기주의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이기적이라는 것은 생존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기적 유전자라는 유전학의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존이라는 이름 아래에 모든 생물체는 이기적이다. 그야 일단 살아남아야 뭘 하든 말든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이타주의는 개인보다는 집단적 의미가 더 강하다. 실제로 뉴스에 나오는 영웅과 같은 모습은 나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을 도움으로써 개인보다는 개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이타주의는 유전적인 요소보다는 오히려 문화적 영향이 더욱 짙게 나타난다. 이타주의는 단지 자손을 위해서만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 종의 다른 구성원들을 위해서도 실행된다.
 -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중에서 - p.187


유전자 자체가 이타주의적이라고는 하기 애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기적인 생존 방식은 문화 형식에 있어서 이타주의적인 향상을 띄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윌슨이 말하는 것과 동일하게 그것은 문화적인 면모를 더 많이 보이고 있다. 


최소한 이타주의적인 요소가 문화로부터 나오고 문화에 의한 영향력을 많이 받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약자를 배려하는 모습이라던가, 사회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사람을 향해서 공동체로서 인식하는 것이 종의 차원에서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적 진화는 분명히 유전적이기보다는 문화적이다. 요점은 거의 모든 인간 사회에서 강력하게 표출되는 근원적인 감정들은 유전자를 통해 진화한다는 것이다.
-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중에서 - p.190


2.3. 신학생이니까 종교는 따로 다뤄야지 

에드워드 윌슨이 말하는 종교성은 어쩌면 종교사회학 정의를 통한다면 포괄적 정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종교성이라고 통합해서 말한다는 점에서 볼 때, 고등 종교를 비롯한 모든 민속종교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 신앙을 가지고자 하는 성향은 인간 정신 중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힘이자, 아마 인간 본성 중에서 근절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중에서 - p.207


종교사회학의 고전적인 입장에 따른다면 종교 행위는 그 집단의 정화이자 사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사회를 유지함에 있어서 종교의 역할은 핵심적이라는 의미다. 물론 지금 우리 사회는 큰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부분에 대한 회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역시 사실 고전주의적인 입장이다. 


그런 점에서 종교는 인간의 고유한 행동에 속한다. 종교성을 통해서 인간은 학습을 하며, 그 안에서 서로 결집하고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종교 안에서 나타나는 이타주의는 각 개인의 생명을 희생하더라도 종의 이익으로 따진다면 생존을 이어할 수 있는 큰 매개체가 된다. 


종교사회학적으로 종교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사회를 결집시키고 그 구성원을 규정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종의 생존에 있어서 구성원의 결집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을 분석했을 때 굉장히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종교적 행동은 사실상 생물학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고귀한 종교 행위도 더 세밀히 조사하면 생물학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것들은 정체성을 고정한다.
 - 에드위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중에서 - p.228


만약 에드워드 윌슨의 말에 신뢰하게 된다면 사실상 신학적 의미는 종교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가 말하고 있는 생물학적 힘이 종교성을 태동시키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생물학적으로 생존에 이익이 되는 종교를 따지고 보면 종교적 행위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3. 맞는 말이다. 분명, 사회생물학적 관점으로 본다면 

에드워드 윌슨의 주장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당연히 이해하게 된다. 그리그 그 주장에 큰 결함이 없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사회생물학적 관점으로 보는 인간 본성이라는 것은 결국 종의 생존의 차원에서 해석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하지만 가장 큰 점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과생들이 이 책을 보고 인문학이 아닐까 생각했던 부분은 과학적 방법론으로서 환원을 존재론적으로 환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방법론으로서 환원주의는 개체의 본성에 대해서 충분히 근거 있는 이야기가 가능하겠지만 그것을 존재론적으로 환원했을 경우에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철학의 분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론적 환원을 통한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이 가능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본성에 대한 존재론적 환원은 사회생물학의 관점에서만 볼 때 가능한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윌슨은 통찰은 분명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한 관점은 인종, 문화를 비롯한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도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과학이 하나의 통합을 이끄는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하는 것이다. 




평점 : ★★★ (이 책 재미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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