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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이전의철학, 헤라클레이토스 / 파르메니데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 3

by 신문철

1. 헤라클레이토스

이전의 철학자는 실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의 문제로 관심을 옮겨 갔다.

그의 핵심적인 명제는 "만물은 유전한다"는 것이다.


그의 유명한 말이 있다.

"당신들은 같은 강물로 두 번 걸어 들어갈 수 없다."


새로운 강물이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동일한 강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며 성장하는 우리 성인도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형상들과 단일한 지속적 요소 사이, 즉 다자와 일자 사이에는 어떤 근본적인 통일성이 존재함이 틀림없다고 헤라클레이토스는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추후에 스토아학파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게 되고 나중에는 헤겔과 니체도 이 사상에 경탄한다.


1.1. 유전과 불

헤라클레이토스가 전제했던 것은 변화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 어떤 것을 ""이라고 주장한바가 있다. 그가 불에 푹 빠진 이유는 불이 변화의 과정을 암시해 주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점 때문이다. 불은 일종의 결핍인 동시에 과잉이다.


불은 항상 무엇인가를 섭취하면서 동시에 항사 무엇인가를 열이나 연기 또는 재의 형태로 방출한다. 그러므로 불은 변형의 과정이며 따라서 불이 섭취한 어떤 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 변형된다.


변화나 유전의 질서 있고 균형 잡힌 과정으로 인해 우주 안에는 안정이 이뤄진다. 실재는 마치 동일한 양을 들이마시고 내뿜는 거대한 불처럼 동일한 정도를 들여보낸 만큼 내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의 목록은 항상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1.2. 보편 법칙으로서의 이성

변화의 과정은 임의적인 운동이 아니라 신의 보편적 이성의 산물이다. 보편 이성의 관념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종교적 신념, 즉 만물 가운데 가장 실재적인 것은 영혼이며 그 영혼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지혜이거나 사유라는 그의 신념에서 출발한다.


물질적 실체인 불이야말로 그가 말하는 일자 또는 신과 일치한다. 따라서 그는 신이란 우주 만물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범신론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에게 만물은 불이자 즉 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조차도 불, 즉 신의 일부이다.


신은 이성이고 만물에 충만해 있는 일자이기 때문에 결국 불은 만물을 통일성 속에 가두며 사유나 원리에 입각해 만물을 움직이고 변화하게 하는 보편 이성이다. 이 원리들과 사유는 법칙의 본질을 구성한다. 이 법칙의 볹리은 곧 보편 법칙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적 영향력은 그가 모든 사유하는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공통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신념, 그리고 나아가 사람들은 신의 보편적 이성이나 보편 법칙을 분유하고 있다는 신념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은 추후에 자연스럽게 "자연법" 사상에 영향을 주게 된다.


1.3. 대립자의 투쟁

우리는 삶을 살면서 항상 투쟁을 한다. 연봉 협상을 생각하기만 해도 그때만큼 치열한 삶을 사는 순간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건 우리의 이러한 삶이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하면 투쟁이 변화 그 자체의 본질이라 말한다는 것이 어느정도 위안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이 세계에서 목격하는 대립자 간의 투쟁은 단순히 한때의 불행이 아니라 만물의 영원한 조건이다.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하면 우리가 변화의 전 과정을 볼 수 있으려면 먼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대립 속에 존재하는 것은 일치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서로 다른 것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사실상 죽음 조차도 우리에게 두려운 것이 아니다. 만물이 일자 속에서 그것들의 통일성을 발견한다면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의 조화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순이라고 생각되는 힘들 역시 실제로는 친밀하게 조화되어 있다.


영원한 불은 이성인 신의 방향 설정에 딸 계획된 속도로 움직이며 모든 변화는 대립자들과 다양한 사물들을 필요로 한다. 더 나아가 신에게는 만물이 공평하고 선하며 정의로우나, 사람들은 어떤 것은 그르고 어떤 것은 옳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는 일자가 다양한 형상들로 체현된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2.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는 이전의 철학자와는 달리 전 우주란 하나의 사물로 이루어졌다는 아주 놀라운 이론을 주장한다. 이러한 하나의 사물은 절대 변하지 않으며, 나누어지지도 않고, 절대로 소멸될 수도 없다. 파르메니데스는 그러한 사물을 "일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을 관찰할 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도토리가 도토리 나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사물들이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따라서 파르메니데스는 그러한 변화와 다양성은 모두 일종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사실 간단하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거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는 소는 존재하지만 유니콘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신은 존재해 존재한다고오오오!!


우리는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을 할 수 있다. 그야 당연하게 존재하는 사물에 대해서만 개념화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변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계는 하나의 불가분의 사물로 이루어져있다.


우선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변화를 주장했다. 도토리가 도토리나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는 "도토리가 없다" "도토리가 생성된다" "도토리가 도토리나무가 된다" "도토리나무가 죽어 없어진다" 라는 생성과 소멸의 순서에서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로 시작해서 끝이 난다는 변화 과정이 환상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세계가 불가분의 사물이라는 것은 관찰되는 수많은 현상들이 결국은 환상이라는 증거다. 길고양이든 반려묘든 결국은 하나의 사물을 공시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1번과 2번의 명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가 "환상"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어떤 것에 관해 그것이 한때 비존재였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하나의 "그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물이나 한 사물의 상태가 비존재에서 또는 비존재로 변화 할 수 없기 때문에 변화의 과정 역시 있을 수 없다.


파르메니데스는 "생각될 수 있는 것과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동일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존재가 존재에서 발생한다면 그 존재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변화나 생성은 있을 수 없다. 한편 존재가 비존재로부터 발생한다면 유가 무에서 발생한다는 모순을 피하기 위해 비존재를 유로 취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경우에 만일 어떠한 운동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존재로부터 존재로의 운동일 뿐이지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가 생겨나기 전에 이미 어떤 것이 존재하며 변화 후에도 그것은 계속 존재하기 한다.


그것은 곧 "일자는 부동의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바와 같다. 만일 그것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이전에 있었던 자리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 대한 모순을 낳게 된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일자는 존재한다"는 사실 뿐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실재가 구형이며 물질적이고 불활성이며 충만된 공간, 즉 덩어리로 거기에는 어떠한 공백도 있지 않으며 또한 그곳을 넘어서면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변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재는 생성되기도 파괴되지도 않으며 따라서 영원하며 불활성적이다.


우리의 상식은 사물이 변화하는 현상을 관찰하기 때문에 그의 논리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감각기관에 대해 부정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감각에 근거한 경험은 이성의 활동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이그의 생각이다.


그의 철학은 추후에 플라톤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면 플라톤은 추후에 이야기할 것이지만, 존재의 무변화성에 관한 파르메니데스의 기본개념을 차용하였고, 이것을 기초로 가시계와 가지계를 구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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