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고자 하는 마음 앞에서

06 딱 한 걸음만 더

by 권미림

"네 안에는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와 더불어 기꺼이 실패를 감수하겠다는 마음도 함께 들어 있으니."_<그래도 계속 가라>, p.62







일어나자마자 설거지를 하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돌아오니, 오전 열한 시였다. 얼른 차를 타고 출발할까 하다가 머리는 감고 가야지 싶어 또다시 시간을 보냈다. 그고 도착하니 두시다.


바다는 아무리 오래 봐도 질리지가 않다. 파란데, 투명하다. 물은 차갑지만, 그 손길은 따뜻하다. 강원도 고성에 왔다. 읽지도 않을 책 한 권을 옆자리에 둔 것만으로 마음 든든해하며, 또다시 바다에 왔다.





*

가을날인데도 이곳은 아직 따뜻하다. 몇몇 아이들이 한 손에 페트병을 들고 맨발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호들갑을 떤다. 여기 꽁치 있어! 어디? 여기! 일로와 봐! 아이들의 소리를 엿들으며 마음이 걔네들 쪽으로 기운다. 진짜 꽁치가 있다고? 마음 같아선 나도 걔네들 쪽으로 달려가 어, 진짜 꽁치네?를 하든 아니면 에이, 이건 꽁치가 아니야, 하며 궁둥이를 붙여 앉든 하고 싶었지만 체면 때문에 말았다.


아이들이 우르르 자기 엄마 품에 안기고 나서야 꽁치가 있다던 곳으로 가봤다. 손가락 굵기만 한 길쭉한 물고기 두 마리가 죽어있었다. 나란히 서로의 배를 대고 죽어있는 물고기를 한참을 들여다봤다. 만지면 여전히 따뜻할 것 같았다. 물고기인데도 말이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읽다가, 진짜 슬퍼져 버렸던 기억이 있다. 정원 한 모퉁이에서 죽어있는 오색빛깔의 자그마한 새, 그 작은 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글이었다.¹ 나는 그가 그 새의 죽음을 '자기'의 슬픔이라 하지 않고 대범하게 '우리'의 슬픔이라 말한 데에 감동했었다. 그리고 적어도 슈낙은, 고성 어느 바닷가에 죽어 있는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보며 나와 같이 슬퍼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치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

삶이 네게 손짓한다고 해서
삶이 항상 너를 호의적으로
봐준다는 의미는 아니란다.



복수심에 불타올라 앵앵거리는 모기를 때려잡고 나서 납작해진 녀석의 몸을 들여다보면, 괜한 미안함이 마음에 스치기도 한다. 아마 그 녀석도 생명이기 때문일 거다. 차에 치어 죽은 고양이나 비둘기를 보는 일도 괴롭다. 살고 싶었을 텐데. 아니, 그렇게 갑자기 죽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을 텐데.


삶은 우리에게 항상 호의적이지는 않다. 실망과 실패, 좌절, 권태, 의심, 심지어 죽음도 우리의 여행길 곳곳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발을 걸고 넘어뜨린다. 넘어져서 떼굴떼굴 구르다가 이젠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우리 안에는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기꺼이 실패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산이 너무 가팔라 보이면 그만두고 싶어 지고, 길이 너무 좁거나 험해져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마음은 우리가 여행을 멈추도록 연민을 사용하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하고, 으름장을 놓으며 협박하기도 한다.


우리는 인생에서의 성공과 실패의 일정한 횟수를 할당받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횟수가 아니라 성공과 실패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 앞에서, 가파른 산길과 좁은 길 앞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갈 힘이 있다는 것을 알면,
포기하는 것보다 계속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사실을 말이다.



기꺼이 실패하고 포기하는 게 훨씬 편하다는 말이 우리의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달콤하게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사실 하나는 결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아직 한 걸음 더 걸을 힘이 남아있다는 사실. 주저앉은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방법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 적어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는 그 힘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줬으면 한다. 방법이나 혜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는 이 글이 너무나도 무력하지만, 그래서 답답하지만. 나는 당신을, 그리고 나를 믿는다.





*

카페에서 커피 한 컵을 마시고 다시 나와 차분한 파도 앞에 앉았다. 이번엔 아무도 없었다.


한참이 지났다. 카페 주인이 키우는 까만 개 한 마리가 해변까지 나와 내 뒤에서 짖는다. 그게 꼭 이제 곧 어두워지니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란 사인 같았다. 실패도, 포기도. 아직 그것들을 생각하기엔 나에게 힘이 남아 있으니, 일어나 조금 더 걸으라는 사인 같았다.





한 권의 책, 수만의 용기

<그래도 계속 가라>

_조셉 M. 마샬 지음, 유향란 옮김, 조화로운 삶

@john.and.molly

photo. @nomadbox, unsplash


¹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p.9, 안톤 슈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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