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공허를 사는 오백 원
07 선택이 나를 만든다
"네 안에는 오만을 부리려는 편협함만이 아니라 연민의 정을 느끼는 따듯한 심장도 함께 들어 있단다."_<그래도 계속 가라>, p.72
겨울을 하루 앞둔 맑은 날. 나무들 틈에 놓인 벤치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쪼로록 앉아계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지팡이에 턱을 괸 채 담소를 나누시거나 장기를 두시며 각자의 일을 하고 계셨지만, 다들 한 손에는 꼭 종이컵을 들고 계셨다. 종이컵 속에 담긴 달달한 냄새를 따라가 보니 가장 끝자리에서 부지런히 믹스커피를 타고 계신 할머니가 보였다. 커피 한 잔에 오백 원. 할머니 옆에 놓인 노란 바구니 안에는 커다란 보온병과 종이컵, 믹스커피 봉지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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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새로 생겼다는 세련된 카페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새하얀 벽과 커다란 창문, 힙한 음악들이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곳. 거기서 아메리카노와 레드벨벳 케이크 한 조각을 만 원이 훌쩍 넘는 돈으로 사 먹었다. 유난히 딱딱한 의자 때문이었을까, 차가운 직원의 말투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아마 꽤 비쌌던 커피 값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던 것 같다. 그 정도 값이면 채워질 줄 알았던 공허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정하거나 위로받기를 원한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욕심을 낸다. 때로는 본질을 잊기 위해서 필요 이상의 돈을 쓰기도 한다. 가장 속상한 소비는 남을 깔보기 위한 소비다. 가지지 못한 사람을 자기 밑에 두기 위한 소비야말로 가장 무력한 소비일 것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위한 소비, 그 따듯한 마음은 삶의 공허를 메우고 가치를 높인다. 꼭 돈이 아니어도 좋다. 시간과 물건, 지혜를 나누는 일, 같이 얘기하며 상대를 세워주는 일은 모두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몇 천 원으로 도넛 한 개를 사 먹는 일보다 노숙인을 위해 그 돈을 건넬 때, 마음이 풍성해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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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친구! 일로 와서 여기 앉어. 내가 커피 살게. 여기 커피 두 잔만 타 주소. 서로 값을 치르겠다며 투닥이는 두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아까 카페에서 쓴 만이천 원을 오백 원으로 나누어 보았다. 스물네 잔의 커피 값이다.
공원에 앉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떤 대화를 그리도 즐겁게 나누셨을까. 정치 얘기나 지난밤 뉴스 얘기, 자식 자랑일 수도 있겠다. 엊그제 나누셨던 얘기를 몇 번이고 다시 나누실 수도 있겠다만, 내용이야 상관없다. 그저 어르신 얼굴에 자리 잡은 주름 사이로 생기가 지나다니는 걸 본다. 믹스커피를 윤활유 삼으며 대화의 꽃을 피우신다. 오백 원이면 찬 공기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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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위해 쓰는 할아버지의 오백 원에 어르신들의 고독과 공허는 한순간에 달아나고, 사이사이마다 웃음이 파고든다. 그 세련된 카페를 빠져나와 마주친 바구니 커피숍에서 마음이 좋아져 버린 건, 바로 그 따듯한 마음 때문이었던 것이다.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가장 훌륭하다는 생각이야말로
잘못된 가르침이지.
한 권의 책, 수만의 용기
<그래도 계속 가라>
_조셉 M. 마샬 지음, 유향란 옮김, 조화로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