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안에는 삶을 외면하려 드는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삶에 용감하게 맞서고자 하는 용기도 함께 자라고 있단다."_<그래도 계속 가라>, p.79
태어난 조카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 눈엔 힘이 없고 초점도 없지만, 아기는 끊임없이 맑고 검은 눈동자를 굴린다. 발가락엔 고춧가루만 한 발톱이 달려있고, 통통한 손목은 보드랍다 못해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동그란 턱은 꼭 지엄마를 닮았다. 아기의 몸에 가만히 손을 올리고 있으면 폐 속에 숨이 들어 부풀었다 작아졌다 하는 게 느껴져 참 기특하다. 아기를 들어 안고 있으면 온몸에 열이 오른다. 아주 따듯하다.
그대로 아기를 안아 든 채 속삭이듯 기도를 했다. 이 조그마한 아기가 살아갈 세상은,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억센 세상이겠습니다. 그러니 아기에게 죽음을 버틸 수 있는 도움을 허락하소서.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아기를 보며 죽음을 생각하는 이모라니. 순간 죄책감이 몰려와, 얘도 사람인가 봐, 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감탄이라고 내뱉고는 민망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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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죽을뻔한 경험은 몇 번이나 있을까 생각해봤다. 중국 우루무치를 향하는 길, 그 사막에서 잘못 굴러 떨어져 죽을 뻔했었지. 또 강화도에서 술 취한 아저씨가 모는 트럭에 치일 뻔했었고, 필리핀 민도르 섬을 향하는 큰 배를 타다가 태풍을 만났을 때도 자칫 죽을 수도 있었겠다. 어린이 시절은 기억도 안 난다. 어쨌든 나는 그때마다 간절히 살길 바랐었다.
그렇담 죽고 싶었던 적은? 지난밤 우울이 밀려와 나를 덮칠 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을 때. 누군가의 죽음. 그렇게 나에겐 죽음이 간절했던 몇 개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때도 나는 살기를 간절히 바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살고 싶은 마음을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되뇌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나는 그때마다 다시 살아났다. 죽을 뻔했던 상황 말고, 죽고 싶었던 상황들 속에서. 아무런 희망이 없던 그 시절마다, 결국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 모든 우울한 마음이 풀린 적도 있었고,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살 소망을 얻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혹은 신음에 가까운 기도를 하다가도 나는 살아났다.
내 안에는 조그맣게 울리는 속삭임이 있었던 것이다. 가끔씩 그 속삭임은 살아갈 수 있다는 차분한 소망의 어조였고, 또 때로는 살아가라는 강한 명령이기도 했다. 죽고 싶었던 순간들마다 내 속에서 울리던 속삭임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속삭임이 나에게만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안에는 살아가라는 속삭임이 울린다. 그대, 삶에 치이고 죽음이 그리울 때마다 그대 안에서 울리는 속삭임에 귀 기울이라. 그 작은 소리는 그대의 집중을 먹으며 몸집을 키워낼 것이다. 살라고, 살아가라고. 그럴 힘이 그대 안에 있다 말하며 그대를 빛으로 이끌 것이라 믿는다.
*
나는 아기를 바라보며 다시 속삭였다. 아기의 키가 자랄 때 그 마음 안에 삶을 용감하게 살아낼 용기도 함께 자라게 하시고, 아기의 경험이 쌓일 때마다 담대히 살아가라는 지혜의 속삭임을 듣게 하소서.
그리고 아기를 보며 죽음을 먼저 생각한 못된 이모를 용서해주소서, 라고도 기도했다.
그것을 다 지니려면
삶이 어떠하든지 간에
용감하게 맞서야 하느니라.
한 권의 책, 수만의 용기
<그래도 계속 가라>
_조셉 M. 마샬 지음, 유향란 옮김, 조화로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