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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Aug 17. 2020

백만 원, 14평, 옥상, 강아지

    집에서 미리 예약해둔 숙소는 엉망진창이었다. 식탁 위에 수북이 내려앉은 건 먼지가 아니라 곰팡이였고, 바닥은 장판을 뚫고 올라온 물방울들로 미끄러웠다. 서랍장을 열어보니 이미 그 속 작디작은 생물들의 세상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팔을 걷어 올리고 집을 차에서 내렸다. 그 뒤로 두 시간 정도 정신없이 청소만 하다가 어지러워 고개를 뒤로 제끼면 곰팡내가 코로 들어와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여보, 여기서 한 달을 살 순 없어."


    나는 이 말을 하면서 쬐금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네 시간 넘게 우리를 고생시킨 뱃멀미와 고흥에서의 장맛비, 다섯 시가 넘도록 점심을 먹지 못한 탓에 밀려오는 허기와 뒤엉킨 감정이었다. 우리는 청소를 하다 말고 거실 한가운데 무릎을 끌어안고 앉았다.


    "우리 다른 데로 가자."


    우리는 그 자리에서 다시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바라는 건 네 가지였다.


    1. 지금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숙소

    2. 곰팡이가 없는 숙소

    3. 강아지랑 같이 지낼 수 있는 숙소

    4. 바다랑 가까운 숙소


    남편은 플랫폼 사이트를 샅샅이 뒤지고, 몇 군데에 길게 통화를 했다. 곰팡이가 핀 빌라 주인과도 오래 통화를 했다. 집주인은 끝까지 우리 앞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미안하다며 환불을 해주겠다 했다. 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주도에서 오래 머물 숙소를 찾는 일은 엄청 엄청 엄청나게 신중해야 했다. 후기 몇 개로 숙소를 결정하지 말고 집주인과 미리 통화하며 좀 까탈스럽게 질문도 조건도 달고 하는 게 좋았겠다 싶다.)



    우리는 애월에서 협재로 넘어왔다. 아니, 춘천에서 고흥, 고흥에서 애월, 애월에서 협재로 몇 번이나 이사한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다시 찾은 숙소는 한 달에 100만 원, 14평 1.5룸, 바다도 한라산도 보이는 깨끗한 옥상 있고 강아지도 같이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그것은 분명한 행운. 이번에도 눈물이 찔끔 났는데, 이번 눈물은 안도의 눈물이었다. 나는 강아지와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감격의 눈물을 훔치며 새 집에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 바닷가 마을을 걸었다. 검은 돌담, 알록달록한 각진 지붕, 파란 하늘, 뜨거운 오후의 늦은 빛. 조금 더 나가니 조용한 바다가 나왔다. 제주도에 왔구나. 여기서 한 달을 사는구나.


   집으로 돌아오다가 네 통에 만원 하는 수박 트럭 앞에 섰다. 아저씨에게 가까이 가니 이제 파장한다고, 그냥 만원에 여덟 통 가져가라며 커다란 봉지에 수박을 담아 주신다. 무거운 수박들을 들고 숙소로 돌아간다. 이거 언제 다 먹지, 하면서도, 무거워서 낑낑대면서도, 마음이 기쁘다. 뱃멀미도, 곰팡이도, 허기도 없는 우리의 제주집으로 돌아간다.


    고된 하루의 해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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