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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Aug 19. 2020

제주, 원했던 삶의 방식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 답할까. 아, 아니요. 사는 건 진짜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계획이 틀어지는 건 한 순간이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내 앞에 툭툭 던져져요. 원하는 걸 가질 때보다 놓치게 될 때가 더 많고, 원치 않았던 일들이 내 옆구리에 착 들러붙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당신이 원하는 삶은 무엇이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음, 내가 원하는 삶은요. 자유롭게 사는 삶? 아니 아니요, 내가 하는 일에 최고가 되는 삶. 그것도 아니면, 사랑하는 삶?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사랑하는 삶?



    중고 자전거를 사기 위해 서귀포 갔다. 내 자전거는 접이식이라 차에 싣고 입도할 수 있었는데, 남편 자전거는 그럴 수 없었다. 때문에 제주에서 지낼 자리를 정하고 난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중고 자전거 한 대를 구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동네 중고거래 어플로 괜찮은 자전거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가격, 적당히 낡은 자전거.


    제주도 서쪽 옹포리에서 남쪽 서귀포 남원읍까지 갔는데 그냥 돌아오기는 아쉬워 근처 예쁜 카페에 들렀다.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 조용한 카페였다. 우리는 바깥이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거기에 놓여있는 파란색 책 한 권을 만지작거렸다. 아주 현실적인 책 제목,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 재생지로 엮은 꽤 두꺼운 책이었지만 자전거 약속 시간은 저녁 일곱 시, 책을 손에 넣은 건 오후 다섯 시. 우리는 책을 펼쳤다. 인터뷰집이었다.


    한 권의 책을 두 사람이 동시에 읽어내리는 일은 합이 잘 맞아야 할 수 있는, 그러니까 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까끌거리는 종이, 차분한 글자들, 흑백 사진들의 유혹. 우리는 꼼짝 않고 책을 읽었다. 잘 읽혔다. 구어체의 문장들은 눈으로 들어와 귓가에 머무는 것 같았다. 인터뷰이들은 제주도에 카페를 연지 4년 된 부부, 식당을 연지 1년이 조금 넘은 청년, 민박집을 운영하는 전직 디자이너 등이었는데, 그들 모두는 각자의 이유로 제주로 건너왔지만 비슷한 점도 가지고 있었다.


    제주도를 워낙 좋아했었어요.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지쳤어요.

    삶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들에게 제주거센 태풍을 피할 단단하고 커다랗고 심지어 낭만적이기까지 한 바위처럼 여겨졌다, 처음에는. 하지만 여행과 삶은 엄연히 다른 법. 이주민들은 치솟는 월세와 냉랭한 이웃들, 생각보다 바쁜 가게 운영 일정 등의 이유로 그들이 꿈꾸던 삶과 다른 방식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고백했다. 낭만적이지만은 않죠(웃음). 한 번 와서 부딪혀 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 욕심을 버려야 해요.


    그러나 그들의 말엔 단단함이 있었다. 후회할지도 몰라요. 아니면 몇 년 내로 다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육지로 돌아갈 수도 있겠고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런 말들이 나에게는 꼭 이렇게 들리는 것 같았다.


    '방식'보다는 '꿈'이 중요하잖아요.

    우리는 꿈꾸고 있어요, 지금도.



    성공 같기도 하고 실패 같기도 한 그들의 삶을 책으로 엿보며 마음이 이상했다. 뭐랄까, 괜한 안도? 라고 하면 좀 못된 것 같지만. 그 봐, 어렵대잖아. 역시 쉽지는 않구나, 하는 마음들이 올라왔다. 조금 지나 다시 드는 마음은, 그래도 그들은 꿈꾸던 삶을 밟아보았겠다, 부럽다, 하는 마음들. 겁을 먹고 지금 있는 자리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생각들을 가졌겠구나. 그들의 꿈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겠구나. 구체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있는 중이겠구나.


    "원하는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에 앞서 주어지는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적어도 그들은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찾은 사람들이겠구나 싶다. 답이 있으면 삶의 방식은 얼마든지 새로 일궈나갈 수 있겠다. 빙빙 돌아서 가고, 느리게 가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삶은?

    모두를 안을 수 있는 삶, 사랑.


    구체적인 삶의 방식은?

    아, 잠깐요. 천천히 하나씩 해보면서 말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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