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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Dec 07. 2020

무심히 자유로운 마음

    어떤 울타리 옆에 '이 울타리를 넘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꼿꼿이 서있다면 나는 그 울타리를 넘지 않을 것이다. '절대 출입금지'와 같이 직관적인 경고의 메시지가 아닌 '웬만하면 넘지 마시오'라는 유연한 경고가 붙어 있더라도 나는 울타리를 넘지 않을 것이다. 혹시 '넘고 싶으면 넘어도 되는데, 안 넘는 게 좋을걸요?'라는 팻말이 서있다면? 그래도 나는 울타리를 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 여러 가지 중 하나는 '잔디를 밟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그걸 유치원 때는 눈이 달린 잔디가 어린이들의 발길에 차여 아파하는 그림으로 배웠고, 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교정의 잔디 혹은 유적지나 공원의 잔디밭에 꽂혀있는 하얀색 팻말로 배웠다. 나는 정말 잔디를 밟지 않았다. 잔디가 아파하거나, 잔디를 가꾸는 정원사의 고생을 헤아렸기 때문이 아니라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꽤 오래전부터 잔디를 밟지 말라는 팻말을 본 적이 없다. 공원에 나가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푸른 잔디밭 위에서 공을 차고 놀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 나도 잔디밭 위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강아지와 뛰어 놀기를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내 속엔 여전히 '잔디를 밟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께름칙한 마음이 조금 남아 있었다.


    시인 이병률 산문집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그런 사람이 옆집에 살았으면 좋겠다. …… 담장을 넘어서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슬쩍 꺾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건 안 돼'라든가, '남의 것을 건드리면 어떡해' 같은 투로 도덕책 읽듯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_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그의 글 앞에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어떻게 꽃을, 그것도 다른 사람의 꽃을 꺾을 수 있을까. 들키면 어떡해.' 그건 옛날부터 배워온 '잔디를 밟지 마시오'나 '꽃을 꺾지 마시오'에서 파생된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 다음엔 분명 통쾌한 마음이 불었다. 시인은 이어서 이야기한다.


누구나 다 아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무심히 자유로운 마음을 앞세울 수도 있는 사람. 그럴듯하거나 그럴 만한 별 기분도 아닌 상황에서 팝콘 터지듯이 웃어젖히는 사람. _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그런 사람이 꼭 내 옆에 있었다. 같이 시골길을 걷다가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라며 어딘가로 달려간 그는 손에 샛노란 들꽃 몇 송이를 꺾어 들고 돌아왔었다. 그는 그런 일에 무심히 자유로웠다. 서점 매대 한 귀퉁이에 놓인 내 책 앞에서 '이 책이 그렇게 잘 팔리고 좋다며?'라고 큰 소리로 얘기해주는 그였다. 조용한 마을 작은 성당 안에 들어가 앉아있다 나오는 일,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 '그건 안 돼'라는 말에 갇혀 하지 못했던 일에 그는 무심히 자유로웠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내가 얼마나 많은 제한에 묶여 있었는지, 그 제한을 잣대 삼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정죄하고 있었는지를 알았다.


    시골길에서 느닷없이 건네받은 꽃에 개미가 달려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그 꽃을 고이 들고 오랫동안 기뻐했다. 서점에서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꼭 내 책을 살 것같아 나는 마음이 달아올랐었다. 고요한 성당 안에서 잠깐 앉아 다리를 쉬일 때 든 마음은 분명 안전함이었다. 나는 그것들로 그의 무심히 자유로운 마음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마 나는  역시 많은 것에 무심히 자유롭길 바라며, 그럴듯하거나 그럴 만한 별 기분도 아닌 상황에서 팝콘 터지듯이 웃어젖히길 바라며,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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