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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Dec 06. 2020

차고지에서

    몇 년 전 겨울, 스승을 만나 뵙고 돌아가는 늦은 밤이었다. 거긴 이제 막 빌라가 들어서기 시작한 한적한 시골 동네였. 그런 동네가 으레 그렇듯 그곳엔 버스 노선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있는 버스의 배차 간격도 다. 나는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 달려가 눈 앞에 있는 버스에 겨우 올라탔다. 버스 안엔 사람이 없었다. 내리는 문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잠깐 졸았다





-

    눈을 떴을 땐 바깥은 온통 깜깜한 산중이었다. 버스 기사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나보다 더 당황한 목소리로 "다음 정류장이 차고진데,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예요?"라고 반문했다. 그제야 난 내가 반대 방향의 버스를 탔고, 그게 하필 막차였다는 걸 알았다.


    마지막 정류장, 그러니까 차고지 주변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깜깜한 밤, 허름한 건물 한 동과 불 꺼진 버스들. 희미한 가로등 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세 명의 기사들. 휴대전화 신호도 잘 잡히지 않는 곳.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든 콜택시를 불러보려고 전화기 화면을 손가락으로 타타탁 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때 중년의 기사 아저씨가 내게 다가왔다.


    "콜택시 부르려고? 지금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오는 택시가 어딨어요."

    "..."

    "내가 전철역까지 데려다줄까요?"


    난 그 호의가 그렇게 무서웠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곳은 깜깜한 산 중, 이제 곧 모든 불이 꺼지고 남아 있는 기사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난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를 게 분명했다. 기사 아저씨는 망설이며 대답하지 못하는 나에게 잠깐만 기다려달라 말하더니, 차고지 깊숙한 곳에서 낡은 레조를 끌고 나타났다.


    "뒷자리에는 못 타니까 앞에 앉아요."


    뒷자리는 정말 앉을 수가 없었다. 트렁크 쪽으로 젖혀진 자리 위엔 잡다한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유니폼, 안전화, 도시락, 아이스박스, 낡은 종이상자 같은 것들. 나는 엉성한 모습으로 레조 보조석에 탔다. 안전벨트를 매고도 최대한 운전자와 떨어져 앉으려고 문쪽으로 엉덩이를 바짝 붙여 앉았다.





-

    머릿속은 온통 불길한 생각들로 가득했지만 차는 아까 버스를 타고 지났던 깜깜한 산길로 되돌아갔고 불이 켜진 건물들이 하나씩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누구에게라도 연락을 해둬야겠다는 생각에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때 아무 말 없이 운전만 하던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아무 말도 못 했네."

    "아... 죄송해요."

    "아니에요. 나도 딱 아가씨 나이쯤 되는 딸이랑 아들이 있어요."


    그제야 바짝 긴장한 엉덩이에 힘이 풀렸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아저씨는 회사에서 학비를 반이나 대줘서 딸이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버스 운전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혹시라도 모르니 밤늦게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여전히 약간 긴장한 상태였지만 그런 얘기들을 들으며 속수무책으로 아빠 생각을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늦게 다니는 나에게 꼭 하셨을 것 같은 말들. '늦게 다니지 마라', '버스 안에서 정신을 놓고 잠들면 안 된다', '밤길 다니다가 무서우면 아빠한테 미리미리 전화 해' 같은 말들. 그 귀찮은 말들.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딸이 부러웠다.





-

    어느새 바깥은 밝은 밤이었다. 아저씨는 역 근처에서 차를 세웠고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건다.


    "네, 기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밝은 밤, 취기에 일렁이는 어느 대학 근처의 역 앞. 밤과 취기를 뚫고 역으로 내려갔다. 집으로 가는 전철 자리에 기대앉아 긴장한 마음을 쉬였다. 잠들진 않았는데, 나는 잠깐 아빠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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