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탐정 일기
제주 한 달살이를 다짐했을 때, 꼭 바다 근처로 가리라 다짐했다. 정작 내가 머물게 된 곳은 아직 덜 익은 초록색 귤나무가 가득한 한산한 시골이었지만, 어쩌면 바다보다 더 생각에 잠기기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J와 떨어져 지내면 그를 의심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혹여 의심이 시작되면 그럴 때마다 바다로 가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계획이었다. ‘의심에 관한 글’을 쓰고 올 거라 당당히 말해서였는지, 감정이 느슨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남자 친구의 일상보다는 글 쓸 생각에 기대가 됐다. 원래 같았으면 J에게 무얼 하는지 인증사진을 보내라고 하거나, 수시로 전화를 걸었을 텐데 말이다. 심지어 인증사진 속에서도 말도 안 되는 증거를 찾으려 하는 탐정이 되었을 것이다.
의심하는 사람들은 자주 탐정이 된다. 있지도 않은 일을 예측하고, 상대방에게 그에 대해 별안간 질문을 쏘아대는 것이다. 보통 이 질문은 부드럽기보다는 공격적이다. 혹시나 내가 탐정으로서 알아낸 사실이 진짜일 때를 대비할 자기 방어 기제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나는 10년 차 탐정으로서 그동안 많은 부분을 예측하고, 몇 번의 촉으로 거짓말을 맞혔다. 그만큼 헛다리 또한 자주 짚었다.
내가 무언가를 질문할 때마다 과거의 연인들은 늘 억울하고 지친 모습을 보였다. 친구들과 노는 사진 속에서 여자의 립스틱과 비슷한 형태를 발견한다거나, 전화 속 들려오는 지나가던 여자들의 말소리에 길길이 날뛰고 있을 때 돌아오는 건, 그의 한숨과 ‘또 왜 그래’라는 한마디였다. 그리고 나조차도 민망할 정도로 남자친구 사진에 찍힌 지나가는 사람의 그림자를 의심하기도 했다.
점점 미쳐가는 것이었다. 숱하게 많은 의심 중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들만 입 밖으로 내뱉어도 나는 이미 미친 사람이 됐다. 아무리 견디고 버텨도 이미 나에게 씌워진 ‘의심병’이라는 프레임(이 아닌 사실이지만)은 벗겨지지 않았고, 한 번이라도 무너지는 날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의심병’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받아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 잘못이 아니라는, 나는 아픈 사람이라는, 나는 상처가 많다는, 나는 죄가 없다는, 끝없는 변호를 해야 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의심을 꾸역꾸역 삼켜야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언니와 형부의 여행 일정이 맞아 함께 바다를 보러 갔다. 바닥에 거품을 내며 사라지는 파도 속에 발을 담그며, 어렴풋이 추억에 젖어 언니 몰래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언니에게 서운한 감정은 추호도 없지만, 일찍이 결혼한 언니를 향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마음이었으리라. 그래도 언니가 결혼하고 나서 좋은 점도 있었다. 집에서 계속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볼 때마다 반가운 사람이 됐다 보니 밀린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가벼운 이야깃거리도 있었지만, 다소 무거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같이 살 때는 절대 꺼내지 못할 이야기인 ‘자해’와 같은.
첫사랑의 세 번째 바람을 끝으로 나는 완전히 무너졌고, 자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