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녹슨 걸음

by 권씀

혼잡한 저녁엔 새들이 더욱 환하게 재잘거린다

V자로 대열을 맞춰가는 모습은 경이로울 때도 있지


노파는 자신의 다리보다도

얇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익숙한 거리를 걷는다


누군가는 휘청이는 발걸음이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노파의 발자국이 한 발짝씩 땅에 닿을 때마다

그림자는 악수를 청하듯 뒤를 따랐다


어쩌면 다독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더디게 언 발걸음은 봄꽃처럼 피어났다


푸른 달은 노파의 기다란 속눈썹 아래 걸려

쉽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어깨동무하듯 줄지어 선 나무들은

주름이라는 흉터로 봄의 풍경을 짰고

지붕 낮은 집들은 자꾸만 거미줄 안에 걸렸다


무엇이 노파의 걸음을 재촉하는 것일까


바람이 주인 없는 편지처럼 배회하는 밤

기생하듯 붙어 산 시간들은

슬금슬금 그늘을 더욱 깊게 눌러쓰고

하루를 오르고 내리는 것은 꽃이 피길 기다리는 것과 같을지도


노파가 걸어온 길마다 꽃잎이 춤을 추듯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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