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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가족

가족이란 울타리 속 퍼즐 맞추기

by 권씀

한집에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식구'의 사전적 의미다. 영화 <고령화 가족>은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413830_317356_33.jpg 한때 주먹 좀 날린 형 '한모'와 한때 잘 나갔던 영화 감독이었던 동생 '인모'

이 영화는 천명관 작가의 동명소설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평화롭던 엄마 집에 나이 값 못하는 삼 남매가 함께 살게 되면서 시작된다. 흥행에 참패한 영화 감독 40세 '인모', 과거 주먹 좀 썼던 44세 백수 '한모', 두 번 이혼 후 세 번째 결혼을 앞둔 35세 '미연'. 이들은 모였다 하면 사건 사고는 물론이고 고성과 폭행이 난무한다. 그야말로 바람 잘날 없는 가족이다. 비록 그 구성원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자식들을 한데 모아놓고 열심히 삼겹살을 구워 입에 넣어주기 바쁜 엄마의 입가엔 미소가, 집게를 든 손은 흥에 겹다.

34134_74473_2420.jpg 서로 날이 선 대화를 하지만 결국 그들은 가족이다. 핏줄보다 위대한 건 밥상인 걸까.

좁디좁은 엄마의 연립주택에 모여든 그들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가족 간의 대화임에도 살벌한 육두문자가 난무하고 방귀 냄새, 고기 한 점 등 소소한 충돌에도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해댄다. 그러다가도 공공의 적이 나타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 남매 중 누군가에게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들은 마치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거칠지만 의리있는 세 남매의 가정사의 반전은 기가 막히다. 한쪽 부모만 같다거나 아예 남남이거나 혼외 자식이거나. 그렇다고 그들은 달라질 것이 없다. 여전히 밥상 가운데 놓인 뚝배기 속 된장찌개에 너나 할 것 없이 숟가락을 넣고 밥을 먹는 '식구'다.

153493dfd813d75c15f1c4177ea9b3a8.jpg 영화 속 밥상 씬의 비중은 꽤 높다. 특히 삼겹살!!


비록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실컷 싸우다가도 "밥먹자"라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밥상 머리에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던 기억을 끄집어내게 하는 끈끈한 가족애에다 가족사의 반전에도 감정의 과잉이 없는 것은 이 영화의 미덕이다.

011BD83651E7D37101 맏이 노릇을 못한다고 자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모' 하지만 그런 한모를 감사는 건 늘 엄마이다.

메마른 삶에서 담벼락 틈새 피어난 꽃을 바라보며 본인을 꽃에 투영하는 엄마의 모습은 자식들을 대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아, 누구보다 가까이 자식들을 지켜보지만 되려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모습을 보인다. 정말 현실이 시궁창인 상황에서도 긍정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한편으론 모든 걸 내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가족 영화라고 하기엔 다소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에피소드들이 엮여있다. 폭력, 이혼, 조폭, 청소년 범죄 등등. 영화의 엔딩 또한 미적지근하지만 되려 그런 부분들이 풋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인간적이었다고나 할까. 핏줄을 넘어 밥상 하나를 공유하는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 [고령화가족], 마음에 빈 자리가 생겨 가족이 그리운 그런 날에 이 영화를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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