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쳐다보지마. 이제부터 넌 여기 없는 거야”
영화 [검은 사제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톨릭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인 김 신부는 축귀·구마의 은사를 받은 사제이다. 본인 스스로 원해서라기보다 스승 신부의 선택으로 그리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서울에 강력한 힘을 가진 귀신이 나타나 중학생 소녀의 몸으로 들어간다. 김 신부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보조 사제를 여럿 구했으나 모두 제풀에 도망쳤고 드디어 서울교구 대신학교에서 최 부제를 만나 짝을 이룬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도입부에 갖가지 이야기가 들어있기는 하나 결국 이 모든 난리법석은 한 지점에 집중된다. 김 신부와 최 부제가 드디어 구마의식을 시작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 구마의식은 매우 오랜 전통이다. 예수님 앞에 귀신 들린 사람이 나타나면 우선 예수님이 귀신의 이름을 묻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귀신은 괴성을 내지르면서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키며 스스로 물러나거나(마가 9,14-28), 끝까지 나가기를 거부하다가 요란하게 끌려 나오거나(마가 1,21-28), 또는 다른 존재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다(마가 5,1-20). 예수님의 구마 기적으로 귀신들렸던 사람들은 모두 정상으로 돌아오게끔 되어있다. 이 같은 복음서의 기적사화를 토대로 ‘구마예식서’가 만들어졌고 사제는 예식서 경본에 따라 의식을 진행한다. 구마의식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져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었고 요즘도 심심치 않게 구마의식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곤 한다. 올해 초 언론보도에는 필리핀에서 구마사제들이 대거 필요해 양성에 들어갔다고 하며 이태리 시골에선 무슨 변고가 생기면 으레 사제가 나서 구마의식을 치러준다고 한다.
가톨릭교회에서 구마의식을 할 때면 우선 주교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보조사제와 같이 진행해야 하며 의식 중에 반드시 정신과 의사를 동반해야 한다. 영화에서도 의사가 문밖에 항시 대기 중인 상황이 펼쳐진다. 이 영화가 상당한 조사를 거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최 부제는 어릴 때부터 지녀온 마음의 큰 상처가 있다. 동생이 위험에 빠졌는데 비겁하게 도망쳤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죄의식을 씻어내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와 사제의 길을 걷고 있었다. 최 부제에게 교회는 일종의 도피처였던 것이다. 귀신은 이를 적절하게 노려 공격을 하고, 성직자 이전의 한 인간으로서 최 부제의 한계가 드러난다. 이어서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드디어 최 부제는 축귀의 은사를 받은 진정한 사제로 거듭나게 된다. 감독이 흔치 않은 주제를 택해 영화를 만든 점은 칭찬할 만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예상 가능한 과정과 교과서적인 결론에 도달한 게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검은 사제들을 여러번 보면서 가졌던 의문 사항과 나름의 정리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범띠의 보조 사제가 필요했던 이유
영화에서 나오는 12 악령 중 하나인 마르바스는 사자 형상을 한 악령으로 실제로는 '레메게톤'에 나오는 72명의 악마 중 서열 5위의 악마이다. 사자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자와 필적하는 동물인 범띠의 보조 사제를 구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양이과인 사자형상을 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고양이들이 박소담 주변이나 구마 의식을 하던 곳 주위로 엄청나게 몰린 게 아니었을까.
2. 벌레와 쥐떼의 의미
벌레와 쥐떼가 나오는 이유는 또 마르바스와 관련이 되어 있는데 마르바스는 질병을 담당하는 악령이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질병과 가장 큰 연관성이 있는 파리, 바퀴벌레, 쥐떼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벌레들을 조종할 수 있으며 사제들에게 살이 썩는 질병을 갖게 하는 것도 이 능력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3. 이탈리아 신부와 최 부제의 차이점
영화 초반의 이탈리아 신부들이 악령을 참수시키려 갈 땐 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이한다. 최 부제가 악령을 참수시키려 할 땐 똑같이 악령이 자동차, 전봇대 등을 조종해서 사고를 당하게 하지만, 무언가 지켜주는 듯 사고를 피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유는 이탈리아 신부들과 최 부제의 한 가지 차이점에서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신부는 자신이 악령에게 먹히지 않도록 빠른 시간 내에 물까지 도달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둔 결과 소녀를 뺑소니치게 되는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데 그 이후부터 신의 가호가 사라져서 사고를 당하게 된 반면, 최 부제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소녀를 위해 물에 뛰어들었고 그런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였고 결국 사고를 모두 피해가게 된다.
또한 택시기사가 신이 보내준 천사라고 해석이 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고 같다. 파주와 일산만 갑니다 라고 말을 했지만 한강 다리로 가 달라는 최 부제의 말에 아무 대꾸도 없이 출발한 점, 백미러에 묵주가 걸려있는 것, 마지막으로 택시번호가 2201 -창세기 22장 1절-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인용한 문구처럼 최 부제에게 시험을 하고 결국 남을 위해서 희생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최부제에게 택시기사(천사)를 내려주어 한강 다리까지 가게 하는 것과 트럭이 오는 장면에서 지켜주는 등 신의 가호를 받게 해 주었다 라고 해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