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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하

'뜻대로 이뤄주소서.'

by 권씀

영화는 열여섯 소녀 금화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때 그것이 죽었어야 한다고.."

99BCD7495C72267408.jpg 금화/그것 역을 연기한 이재인 배우

금화는 태어날 때 쌍둥이 언니에게 다리를 뜯겨 걷는 것도 불편한 소녀다. 온 몸에 돋아난 검은 털, 그리고 동생의 다리를 물어 뜯는 잔인함에 태어날 때부터 어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아기는 "곧 죽을 것"이란 의사의 말과 달리 16년을 금화와 함께 성장했다. 이름도 없는 쌍둥이 언니의 울음 소리를 감추기 위해 가족들은 개를 길렀고, 그들이 이사를 한 동네에서는 가축들이 집단 폐사하는 저주가 일어났다. 용하다는 무당도 쌍둥이 언니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다른 장소에서 한 소녀의 사체가 발견된다. 공사를 마친 터널 콘크리트가 벗겨져 나간 틈 사이로 중학생 소녀의 손이 드러난 것. 황반장은 이 사건을 '터널 여중생 살인사건'으로 이름 붙이고, 몸에서 팥과 부적이 발견 된 피해 소녀를 살해한 범인의 행방을 쫓는다.

99D9C84F5C72267029.jpg 박웅재 목사 역을 맡은 이정재 배우. 극의 긴장감을 더하면서도 틈을 넣어 극의 집중도를 높였다.

종교 문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박목사는 그 즈음 "불교가 더 돈이 된다"며 석가모니를 수행하는 사천왕을 모시는 신흥 불교단체 사슴동산에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취재에 나선다. "세상에 이유 없는 돈도 없고, 이유 없는 종교도 없다"고 믿는 박목사에게 헌금도 받지 않고 지나치게 조용하고 선한 사슴동산은 이상한 단체로 보인다. 박목사가 사슴동산에 집착하게 된 건 단순히 그 이유이다. 목적성이 없는 단체이기에.

996367495C7226720A.jpg 미스터리한 인물. 나한 역의 박정민 배우

금화와 황반장, 박목사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세 사람을 하나로 잇는 건 미스터리한 정비공 나한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경찰보다 먼저 터널 여중생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았고, 결단과 행동을 독려한다.(그들이 오랜 시간 전 만들어진 계획의 일부였기에 어쩌면 집행자였기에 이 부분은 후반부에 설명이 이뤄진다.) 그리고 사슴동산의 신도의 도움을 받아 금화에게 접근하면서 박목사의 의심을 받지만 거침없는 행동으로 그를 제압한다. 전혀 관련이 없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서사로 모아지는 과정은 탄탄하게 설계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992E0C4F5C72266E38.jpg 프리퀄이 만들어진다면 박웅재 목사의 조력자가 되지 않을까. 황반장 역은 정진영 배우가 맡았다.

하지만 극의 중반부 이후 펼쳐지는 반전이 극을 완전히 흔들어 놓는다. "과연 신은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음에도 충격적인 캐릭터들의 변화는 혼란을 야기한다. 박목사가 천신만고 끝에 귀신을 잡는다는 전형적인 엑소시즘 영화의 쾌감을 기대했던 이라면 배신감을 느낄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바하'가 잘 만든 영화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듯 하다. 어느 한 종교에 대한 일방적인 강요없이 기독교와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극의 곳곳에 녹아 있다.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아니 무신론자라도 이해에 어렵지 않을 정도다. 여기에 각 종교의 감성을 불어 넣은 볼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큰 소리로 불경을 외우고, 통성 기도를 하는 등의 모습이 다소 섬뜩하게도 느껴지지만, 그 자체로 처절한 신에 대한 깊은 갈망을 보여준다.

99E2354F5C72267103.jpg 박웅재 목사는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 비현실적인 사건을 '있을법 하다'고 납득하게 하는 건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었다. 담배를 태우고 외제차를 모는 돈 밝히는 박목사 역의 이정재, 신을 위해 인간성을 버려야 했던 나한 역의 박정민은 그 누구도 대체 불가능한 캐스팅이었다.


장재현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에서는 신의 존재에 대한 확인이 확신으로 되었다면, 사바하에서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과 신을 따르는 이들의 이면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종교 영화들 중 잘 만든 영화를 물어본다면 망설이지 않고 나는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위치는 어디쯤에 있을까. 신은 있을까. 신이 있다면 균형을 맞추는 것보다 왜 방관에 가깝게 지켜만 보고 있을까. 일련의 질문들을 와르르 쏟아내봤을 때, 위 영화들이 어느 정도 답을 내려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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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한지는 꽤 지났지만 여운이 오랜 시간 남아있는 영화 사바하.

올 여름의 시작 무렵 다시 사바하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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