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바라기] 리뷰
"술을 마셨느냐?"
"아니요.."
"싸움을 했느냐?"
"아니요.."
"그럼.. 이제 울 일이 없겠구나.."
작은 지방의 도시.
동네 깡패들 조차 피하던 '미친 개' 오태식은 시비가 붙어 싸우다 상대를 칼로 찔러 죽여 10년형을 선고받는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출소하여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오태식의 개과천선한 모습에 그를 알던 고향 사람들은 다들 경악을 금치 못한다. 과거 오태식의 전설을 알던 옛 친구들은 바뀐 그의 모습에도 선입견을 버리지 못하고 그를 끝까지 경계하고 피하려한다.
하지만 그런 오태식을 받아주고 돌봐준 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의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덕자다. 그녀는 사실 오태식한테 살해당한 피해자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찔러 죽인 오태식을 용서하고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준 후, 엄마라고 부르라 이른다. 처음에는 오태식도 어색함과 미안함에 어머니라 부르지 않았으나, 점차 마음을 열고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른다.
오태식은 감옥에 있던 시절, 어머니한테 수첩을 선물 받았었다.그리고 복역중에 출소 후, 자신이 하고싶은 일들과 소망들 그리고 세 가지 약속을 적어놓는다. 오태식은 그렇게 출소 후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수첩과 함께 자신의 소박한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호두과자 먹기', '울지 않기', 등등. 하지만 여전히 그의 개과천선을 믿지 않는 무리들. 그리고 자신을 거둬 준 어머니의 가게를 노리는 건달들에 의해 그의 평범한 일상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오태식에게 원한이 있던 조직의 두목 조판수는 덕자의 식당 '해바라기 식당'을 철거하려 든다. 조판수와 조판수의 부하들은 해바라기 식당을 철거하기 위해서 덕자를 죽이고, 희주를 벽돌로 내리찍는다. 태식은 덕자의 장례를 치르고 집 근처 사진관에 맡겨뒀던 덕자, 희주, 본인이 찍힌 가족사진을 보며 눈물을 쏟아낸다.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방에 떨어진 귀걸이 조각을 보고, 덕자를 죽인 이가 조판수의 부하 양기임을 알아챈다. 태식은 덕자와 희주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조판수가 개업한 주점 오라클에 찾아가서 모두 제압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판수에게 복수를 하고 불타오르는 오라클 안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희주가 태식을 상상하며 태식이 했던 것처럼 본인이 달성한 목표를 적어둔 수첩에 X자로 선을 긋는다.
해바라기는 소위 말하는 밈으로 쓰이는 장면과 대사들이 많은 영화이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라더라, 알아들었냐? 지금부터 내가 벌을 줄 테니까... 달게 받아라."
"병진이 형, 형은 나가... 나가, 뒤지기 싫으면."
"오태식이 돌아왔구나."
이렇듯 많은 명대사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인상이 남은 대사는 영화가 끝나갈 때쯤에 나오는 대사이다.
"술을 마셨느냐?"
"아니요.."
"싸움을 했느냐?"
"아니요.."
"그럼.. 이제 울 일이 없겠구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태식을 마치 친자식인양 거두고 보살피는 해바라기 식당의 덕자는 한국 사회가 찬양하는 모성애의 표본이다. 덕자의 딸이자 태식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희주만이 캐릭터의 전형성에서 살짝 물러나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청춘스타 김래원을 전면에 내세우긴 했지만 줄거리 자체가 색다르지 않았고, 그간 한국영화계가 양산한 조폭영화의 한 아류로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투적인 줄거리와 전형적인 캐릭터를 가지고도 충분히 새롭고 흡입력 있는 영화가 되었다.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입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로도 기념비적인 영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