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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악행의 현장에 우리는 함께 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 리뷰

by 권씀

거듭되는 악행의 현장에 우리는 함께 있다

우리는 사회면에 실리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에 대해 극히 일관된 분노를 느끼며 일벌백계 이상의 처벌을 원한다. 사형이라는 법정 선고는 있지만 멈춘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에 대해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회의감과 범죄자들에 대한 분노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관련 기사에 달리는 코멘트들은 다소 노골적일만큼 처벌에 대한 내용들이 많은 편이다. 만약 우리들의 주변인 혹은 건너 건너의 지인들까지 포함해서 (그러면 안 되지만) 극악무도한 범죄에 노출이 되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할까. 그에 대한 하나의 답이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아닐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장면 하나하나에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숨이 막히고 깊은 피로감이 밀려온다. 처절한 응징의 과정에 집중했기 때문에 복수를 소재로 한 영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되도록 관람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내가 피해자라도 된 듯한 시선 처리와 적나라한 장면들이 가득해 중간에 극장을 뛰쳐나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웬만한 호러영화를 훌쩍 뛰어넘는 폭력 묘사는 심약한 관객의 눈을 가리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루하지는 않다.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복수극의 장르적 매력을 끝까지 밀고 나간 김지운 감독의 뚝심은 이영화를 다른 장르영화와 차별화시킨다. 연쇄 살인마에게 약혼녀를 잃고 광기 어린 복수를 시작한 수현과 양심의 가책도 이유도 반성도 없는 악마 같은 경철의 대결이 관객을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짐승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짐승이 된 수현의 상황이 관객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누가 죽을지 모르고 누가 살아 남을지 알 수 없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사람은 없다. 복수라는 단어가 가진 두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한 '악마를 보았다'는 예리하게 풍자적이며, 곱씹어서 봤을 때 은근하게 숨겨진 의미가 도드라진다. 제한상영가 판정을 두 번이나 받았을 만큼 폭력의 강도가 센 영화다. 특히 타협 없이 극한까지 몰고 가는 주인공의 응징에서 느끼게 되는 쾌감은 상당하다. 두 인물의 감정 상태에 격해짐에 따라 관객의 감정도 따라서 격해진다. 복수를 끝내도 하나도 개운하지 않은 수현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마지막 남은 희망의 기운마저 흡수해 버린다. 보는 이를 무력하게 만들고 러닝타임 내내 긴장하게 만드는 이 영화의 매력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영화 속에는 수많은 연쇄살인마가 등장했다. 자칫 식상한 캐릭터가 될 수 있는 연쇄살인마를 최민식은 매우 입체적으로 연기한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 5년 만에 상업영화에 도전한 최민식은 살인마의 심리를 활화산처럼 스크린 위에 펼쳐낸다. 연쇄살인마에게 약혼녀를 잔혹하게 살해당한 국정원 경호요원을 연기한 이병헌의 연기도 훌륭하다. 이병헌, 최민식 두 배우는 이 영화가 세운 공 가운데 절반은 떼어주어도 될 만큼 호연을 선보였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또 하나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촬영, 조명 미술, 의상 등 화면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완성도이다. 김지운 감독과 세 번째 작업을 같이 하게 된 이모개 촬영감독 등이 빚어낸 빼어난 화면이 속도감 넘치는 편집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영화를 빛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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