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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눈물 젖은 짜장면을 먹어본 적이 있나요?

영화 [김씨 표류기] 리뷰

by 권씀

영화는 2억 정도의 빚을 가진 경제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몰린 남자 김씨가 한강에서 투신하면서 시작한다. 자살하고자 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물가로 떠내려온 김씨. 어쩔 수 없이 돌아가려는데 그가 온 곳은 하필 한강 한가운데 버젓이 고립된 밤섬이다. 나갈 길이 없으니 배터리도 얼마 안 남은 핸드폰으로 구조 요청을 해보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결국 김씨는 넥타이로 목을 매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하고, '죽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다'며 밤섬에서의 표류 생활에 적응해 간다. 섬에 버려진 오리 보트로 내 집 마련의 꿈도 이룬다. 처음엔 나가려고만 했지만 섬 생활을 계속하며 사람에 안 치이고 사회에 안 치이고 정치 경제에 안 치이는 섬 생활에 익숙해졌다. 한강 주변을 돌아다니는 관광 크루즈를 보고 처음엔 구조 요청을 했지만 나중엔 도망을 다닌다.

한편 여자 김씨는 자기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어머니같은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대인기피증 환자였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불펌해 적당히 합성, 보정해서 자기 홈페이지에 올리며 과시하는 걸 낙으로 삼는 무의미한 생활을 3년째 하고 있다. 그렇게 온라인에서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외로움을 달래면서 버티고 있던 어느 날, 기다리고 기다리던 민방위 훈련이 시작된다.

그녀의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건 사진찍기인데, 달 사진 찍는 것 외에 좋아하는 것이 민방위 훈련으로 잠시동안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는 거리 사진을 찍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날도 신나게 거리를 찍던 도중, 우연히 밤섬에 표류하고 있는 남자 김씨를 발견한다.

처음엔 자기가 헛것을 봤나 싶었지만, 그날 이후로는 계속 김씨의 표류기를 관찰하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다. 그리고 점점 어떻게든 그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용기를 내 한밤중 집 밖으로 나가 밤섬 쪽으로 병에 담은 편지를 던져넣어 교신을 시도한다.

한편 남자 김씨는 점점 무인도 생활에 능숙해진다. 버려진 페트병을 샌달로 만들어 신고, 처음엔 헛방만 치던 물고기도 작살로 한 방에 잡아낸다. 그러던 어느 날 섬 수색을 하던 도중 우연히 스프만 들어있는 짜파게티 봉투를 발견하게 되고, 갑자기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열망이 급속도로 커진다. 물론 스프가 있다 해도 무인도에서 면을 얻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충동적으로 스프라도 빨아먹을까 하다가 그만둔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집(오리배)에 새똥을 싸지르는 새들을 불평하다가 새는 식물을 먹으니 그 새똥에서 씨앗을 얻어 농사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을 떠올리고 열심히 새똥을 긁어모아 심는다. 그러자 정말로 그 중에 몇몇 종류의 작물들이 자라나고, 마침내 무인도에서 농사까지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섬을 수색하다가 여자 김씨가 보낸 병 속의 편지를 발견해 둘은 지속적으로 펜팔을 하게 된다.

짜장면을 먹기 위한 남자 김씨의 사투를 본 여자 김씨는 밤섬으로 짜장면을 배달시켜 주지만 남자 김씨는 이를 거부하게 된다. 이런 모습에 여자 김씨는 자기 스스로 짜장면을 만드는 과정이 남자 김씨에게는 단순한 음식을 먹기 위함이 아닌 '살아갈 희망'임을 깨닫고 3년 만에 어머니를 대면해 옥수수 씨앗을 부탁해서 자기 방에 옥수수를 기르게 된다. 한편 남자 김씨도 결국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 열심히 농사지어 기른 작물들 중 옥수수가 있었고, 그 옥수수 낟알을 갈고 반죽해 면을 만들어낸 것. 거기다 다른 작물들 중 콩이며 오이며 하는 것들도 있어 그것들도 전부 모아서 아예 짜파게티 포장지에 있는 것과 거의 똑같이 만들어낸다. 남자 김씨는 그렇게 만든 짜장면을 먹다 눈물을 흘리고, 이 모습을 본 여자 김씨 또한 미소를 짓는다.

허나 여자 김씨가 남자 김씨와의 교신에 정신이 팔린 사이 자기 홈피가 남의 사진들을 도용했다는 것이 들통나고, 심지어 어두운 과거까지 폭로당하면서 남자 김씨와 교신하며 바깥세상에 마음을 열어가던 여자 김씨의 마음은 다시 굳게 닫히게 된다. 이와 동시에 서울에 폭우가 내리면서 남자 김씨가 일궈왔던 밤섬의 보금자리가 풍비박산 나고, 한강 정화 작업을 나온 해병대 전우회들과 사회복무요원들에게 발각되면서 남자 김씨는 강제로 밤섬에서 끌려나오게 된다.

밤섬에서 끌려나온 김씨는 한강에 뛰어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오히려 밤섬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생활하던 중 모든 걸 잃어 큰 상실감을 느낀다. 여자 김씨는 섬에서 쫓겨난 남자 김씨를 만나기 위해 얼굴도 안가리고 대 낮에 세상으로 뛰쳐나온다. 남자 김씨는 확실하게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63빌딩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가 탄 버스를 보고 열심히 달리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남자 김씨를 놓친 여자 김씨는 엉엉 우는데, 그 순간 사회가 잠시 멈추는 민방위 훈련 사이렌이 울린다. 그 덕분에 버스가 길에 정차하면서 여자 김씨는 버스를 따라 잡을 수 있었고, 기적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다. 서로를 마주한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는 삶의 희망을 갖게 된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희망'이다. '희망 소비자 가격'에서 '희망'을 강조하여 보여준다. 주인공에게 그토록 꿈꾸던 짜장면이 배달되었으나, 정작 주인공은 짜장면은 희망이라며 돌려보낸다. 누군가가 베풀어 준 짜장면은 그에게 희망이 될 수 없었다. 그에게 진정한 희망이란 스스로 만들어 감에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사회에 있었으면 관심 없었을 '짜파게티'의 스프에도 삶의 희망을 얻으며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래서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는 명언까지 나온건데, 이 영화에서는 유쾌하고 코믹한 상황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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