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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상황을.

영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 리뷰

by 권씀

잘못이 드러나기 전까진 아무도 잘못한 게 아니야!


경찰인 조현수는 어머니의 신장 이식을 돕겠다는 천인숙 팀장의 지시대로 고병철이 이끄는 범죄조직에 잠입하기 위한 계획을 짠다. 현수는 신분을 세탁해 고병철의 부하인 한재호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에 들어가 패기로 그의 눈에 띈 후 그의 사람이 되어 잠입할 계획을 짠다. 재호는 교도소 내 담배 유통권을 장악하며 대통령으로 군림했지만, 고병철이 재호를 토사구팽 마냥 제거하기 위해 심은 김성한에게 권력을 통째로 뺏긴다.

어쩌면 재호는 현수에게 매달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현수는 김성한의 부하에게 살해당할 뻔한 재호를 구해주고, 꾀를 내어 보안계장을 협박하여 교도소 내 권력을 재쟁취하는데 도움을 주며 그의 신뢰를 얻는다. 재호는 성한과 그 부하를 잡아다가 고문하는 과정에서 고병철이 자신을 제거하려 계획을 세운 것을 알아채고, 둘을 병사로 위장해 죽인다. 한편 사람을 믿지 않는 재호는 고병철의 조카이자 부하인 고병갑을 통해 현수의 뒤를 캐고 현수가 경찰임을 알아챈다.

이 둘의 관계는 얼음장 같았다가도 불꽃같다

재호는 현수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계획을 짠다. 재호는 현수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이고, 현수는 비탄에 빠져 특별 외출을 천 팀장에게 요청한다. 천 팀장은 이미 정승필을 잠입시켰다가 병갑의 손에 잃은 상황에서 현수마저 신분을 들키게 할 수 없어 에둘러 거절한다. 게다가 천 팀장은 재호의 부하가 현수의 어머니를 죽인 것을 확인하고도 일을 그르칠까봐 현수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재호는 슬픔에 잠긴 현수를 위해 외출을 돕고, 어머니 장례식을 다녀온 현수는 재호의 사람이 된다.

형제 이상의 케미를 보여준 두 배우

재호는 현수에게 출소 후 일을 같이 하자고 제의하고, 현수는 자신이 경찰이라고 털어놓는다. 재호는 먼저 출소하고 현수가 출소할 때 데리러 오면서 현수는 조직에 이중 스파이로 몸을 담게 된다. 천 팀장은 고 회장을 찾아갔지만 현수를 모른 체하며 연기한다. 현수가 처음 맡은 일은 세관 도장 등을 빼돌린 최선장을 박살내는 일. 현수는 위기에 빠지지만 재호가 구해주며 일을 잘 마무리한다. 다음 일은 러시아 조직을 통한 마약 밀수. 재호와 함께 러시아 조직 소굴로 들어간 현수는 시계를 건네주려 몰래 온 동료 경찰 민철과 언쟁을 벌였고, 재호에게 이 상황이 걸려 적당히 무마한다. 하지만 재호는 현수를 믿지 않으며 몸수색까지 한다. 재호는 현수를 자신이 처음 사업을 시작한 곳으로 데려갔고, 현수에게 왜 사람을 믿지 않는지 설명한다.

김희원과 임시완, 이 두배우의 전작 미생을 떠올린다면 묘한 장면이다

한편, 천 팀장은 현수를 납치해 이중 간첩인지 테스트하지만, 현수는 마치 재호가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는 듯이 말하며 위기를 탈출한다. 현수는 천 팀장에게 밀수 계획 정보를 흘리고 경찰은 현장을 호기롭게 덮치지만 이미 현장은 현수의 계획대로 조작되어 있었고 마약은 현수가 빼돌려 놓은 상황. 천 팀장은 물을 먹고 돌아가고, 현수를 통해 물건을 확인한 재호는 병갑과 계획한대로 병철을 제거하고 조직을 장악한다.

현수의 능청스러움과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 씬

현수는 일부러 총을 빗겨 맞으며 경찰의 의심을 피하려 하지만, 천 팀장은 최후의 카드로 어머니 교통사고 장면을 현수에게 보여주며 조직을 완전히 배신하게 끔 만든다. 현수는 분노하며 재호에게 병갑에 대한 의심을 심어주고 둘이 항상 만나던 장소로 불러낸다. 재호는 현수가 의심스럽지만 병갑을 명패로 때려 죽이고 마약을 챙겨 현수에게 향한다.


상황을 믿어야 했지만 결국 사람을 믿었던 그들

현수를 만난 재호는 자신이 속았음을 알았고, 현수는 권총을 든 재호에게 자신을 쏘라며 하지만 재호는 쏘지는 못한다. 경찰이 재호를 급습하지만 현수를 통해 경찰의 습격을 알고 있던 재호는 민철을 제외한 경찰들을 역습으로 죽인다. 민철은 현수를 인질로 잡아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만 현수가 이를 벗어나려하면서 싸움이 벌어진다. 민철은 현수의 총에 맞은 부분을 공격한뒤 제압하여 총으로 겨누지만, 재호가 뒤에서 민철의 목에 총을 쏴 현수를 구한다. 경찰을 다 제압한 재호는 끝까지 현수를 죽이지 못하고 현장을 나서지만, 천 팀장이 모는 차에 치여 쓰러진다. 천 팀장은 재호의 몸을 뒤져 차키를 가져가 재호의 차에서 물건을 확인하지만, 현수가 따라 나와 권총으로 천 팀장을 쏴 죽인다. 현수는 뒤이어 쓰러진 재호에게 권총을 쥐어주고 입과 코를 막아 질식사시킨다.


불한당은 장점이 많은 영화이다. 전에 리뷰한 왕의 남자에서도 살짝 언급했듯 속도감, 남자들의 우정 이상을 그려낸 영화 중 이보다 잘 만든 영화는 아직 없다. 설경구의 타고난 악인의 연기는 말할 필요 없이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임시완의 성장이 눈에 들어온다. 전작들 (미생, 변호인, 오빠생각)에서 선보인 바르고 착한 이미지에서 이 작품에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단순히 욕설을 잘 뱉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표정을 자유자재로 구기며 동작 하나하나에 거친 면을 채워넣은 그의 연기는 많은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영화 전체의 색감은 무척이나 감성적이고 감정적이다

완전한 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의 위치에 있던 것은 아닌 전작 '원라인’에서는 특유의 순진무구함으로 상대를 속이는 악인이었다면, ‘불한당’에서는 내면부터 차오른 악을 있는 그대로 표출시킨다. 극 초반 치기어린 면모부터 재호를 닮아가며 점차 잔인함으로 점철된 악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온전히 전달한다. 입체적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한 그의 연기는 설경구에 밀리지 않았으며, 이른바 '불한당원'이라는 팬덤을 탄생시켰다. 이는 변성현 감독의 연출에도 큰 박수를 전해야 하는 부분이다.

만약 이 둘이 출발점이 같았다면 이런 조우가 가능했을까

설경구, 임시완 외에도 조연들의 뒷받침 연기 또한 탄탄하다. 현수를 의심하고 뒤를 쫓는 오세안무역의 왼팔 병갑 역을 맡은 김희원은 지금까지 쌓은 재호와의 관계를 파고든 현수를 경계하며 악인 중에 또 하나의 ‘의리’를 외친다. 틈틈이 유머를 섞으며 김희원표 정감 있는 악인의 톤을 유지한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톤의 영화 전체 톤을 정돈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밝고 가벼운 톤이 되려 영화의 중심을 잡을 수 있게해주는 것이다.

배우 김희원의 연기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전혜진의 존재감은 이번 작품에서도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오세안무역의 조직적 비리를 노리는 경찰 천팀장으로 분한 전혜진은 오세안무역 회장 고병철과 능글능글한 농담으로 신경전을 펼치는 것부터 유일한 홍일점임에도 독창적인 카리스마로 장면을 휘어잡았다. 그리고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로 작용하는 건 이 인물이 여태 한국영화가 그래왔던 것처럼 단순히 소모성의 캐릭터로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호해야하거나 단순히 서포트를 하는 위치가 아닌 같이 극을 이끌어가며 영화 전체의 조화를 이룬다. 이 부분은 앞으로 개봉할 다른 한국 영화들이 참고로 해야할 부분이 아닐까.

전혜진 배우가 아닌 다른 배우였다면 이 배역이 매력있었을까

불한당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가질 수 있는 신뢰와 의심을 좀더 특이한 상황에 두고 관팔하게 해주는 영화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쌓고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어렵기 그지없다. 누군가를 쉽사리 믿었다간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내 속내를 힘겹게 털어놨다가 되려 그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신뢰 또한 자신에 대한 믿음과 관계에 대한 용기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사람은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상황을.

재호의 말이 메아리처럼 남는 영화. 불한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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