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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씀 Jun 24. 2022

운명을 개척하는가. 받아들이는가.

영화 [관상] 리뷰

관상은 일종의 운명론이자 결과론이다. 관상을 보는 사람은 들은 이야기에 지나치게 휩쓸려 자기 중심을 잃거나, 이를 바꿔나가려고 애쓰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한재림 감독의 영화 <관상>의 줄거리도 관상을 보는 행위와 비슷하다. 1453년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단종을 밀어낸 ‘계유정난’은 역사이므로 그 결과를 바꿀 수 없다. 얼굴형이 사람의 운명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관상학 논리처럼, 영화 역시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결국 다 아는 이야기를 처음 보는 이야기처럼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연애의 목적>(2005), <우아한 세계>(2007) 등을 연출했던 한재림 감독과 이 시나리오로 2010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대상을 수상한 김동혁 작가는 계유정난이란 역사적 사실에 조선 최고의 관상가 김내경을 창조해 끼워넣는다.




김내경은 몰락한 양반가의 자손으로 칩거하며 관상을 봐주며 생계를 잇지만 기생 연홍의 제안으로 처남 팽헌과 함께 한양 땅을 밟는다. 그에게는 관상을 믿지 않는 귀한 아들 진형이 있고 그를 도와주는 충신 김종서와 정적 김종서를 없애고 왕에 오르려는 야심가 수양대군이 있다.

운명을 믿고 살던 내경에게 한양에서의 벼슬길은 스스로를 운명론에서 조금씩 꺼내는 일이었다. 이름도 숨기고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오른 아들 진형의 노력하는 모습은 그를 더욱 더 운명론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결국 왕조교체의 거대한 운명과 그것을 바꾸려는 내경의 노력이 극의 긴장감을 만든다.

영화 <관상>은 슈퍼캐스팅만큼 엄청나게 대단하거나, 소름끼칠만한 부분을 전해주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스토리나 전개도 생각보다 평이한 편이고, 이런 정치적인 난을 다룬 영화들이 뭔가 확 가슴에 다가오는 부분이 있던 과거 비슷한 류들을 생각하면 조금 약한 감도 든다. 대신 여운이 길게 남는 점이 조금 특별하다. 그건 이 영화의 주제하고도 어느정도 연관된다.   

가상의 인물인 관상쟁이 김내경을 통해 바라본 계유정난은 그야말로 인생의 덧없음이었다. 사실 김내경의 과거가 있는데 영화에선 빠졌다. 극중에서도 내경의 집안이 몰락했다고 나오는데 그의 가문을 몰락시킨 건 바로 김종서다. 그런데 참 얄궂게도 그의 편에 서게 된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어디 또 어딨을까.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조금 먹고살겠다고 자신의 관상능력을 마구 놀리다보니 왕도 만나게되고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건 피바람이다. 자신도 역적을 일으킨 수양대군도 어린왕을 돕겠다던 김종서도.

모두들 인생의 한몫을 잡겠다고 야망을 품고 뛰어든 피바람의 정치난이었지만, 결국 남는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인생의 덧없음뿐이었다. 실제로 관상을 보면 그 사람의 운명을 알지도 모르겠지만 운명은 충분히 바꿀수도 바뀔수도 있는 것이다. 관상만 믿다가 피를 본 이들은 물론이고 그렇게 관상을 잘 알았다던 김내경의 끝, 자신은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상과 운명은 결코 몰랐던 것일까? 모두 부질없는 혀놀림이었을 뿐이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영화의 초중반은 이 흥미로운 소재 '관상'을 통하여, 역적의 상, 왕이 될 상 등등을 구분해내는 김내경의 일화를 재미나게 그려내고있다. 워낙 능청스럽게 그 역할을 잘 연기해낸 송강호덕분인지, 영화는 가벼운듯 재미난듯 방방 뜨고 덕분에 관객들은 즐거워한다. 그 옆에는 <건축학개론>의 '납뜩이'를 '사극판으로 업그레이드한듯한 조정석의 연기와 캐릭터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수양대군의 등장 이후부터 영화는 이전까지 유지했던 유쾌한 분위기를 일순간에 버리고 무거운 역사적 진실 속으로 쓸려 들어간다. 마치 앞 부분과 다른 작품을 보는 듯하다. 운명은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아니면 냉혹한 굴레 자체인지 쉽게 납득시키지 못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를 잘 풀지 못한 셈이다. <관상>은 '인생의 덧없음'이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관객들을 웃게도 하고, 나름 잔잔한 여운도 남긴다.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데가 없으나, 스토리가 다소 예상가능하고 긴장감면에서도 긴 러닝타임때문에 아주 타이트한 정도는 아니었다. 기대만큼의 엄청난 '무언가'가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무난히 평균이상은 해준 영화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에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고, 미신을 믿기도 하며, 관상처럼 이론을 만들어 추리한다. 하지만 사람의 행동이 자신의 운명을 만든다. 영화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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