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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소스와 고추장의 균형이 맞지 않다면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리뷰

by 권씀

원작이 있는 리메이크작은 원작을 뛰어넘는 경우가 잘 없다.음식이라면 현지화가 잘 어울리지만 그걸 잘 버무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영화나 드라마도 이와 마찬가지로 원작을 가져다 포맷을 아무리 바꾸고 등장인물의 설정에 변화를 준다해도, 원작을 본 관객 또는 시청자들은 비교를 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설정은 나쁘지 않았다. 한반도 특유의 상황에 이걸 버무리는 시도도 괜찮았고. 한반도에 종전이 선언된 후 남북간의 경제협력 체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기존의 비무장지대에는 공동경제구역 JEA가 조성된다. 그리고 한반도 공동 화폐(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의 초상화가 새겨져있다) 생산을 위한 조폐국이 설립된다.

그러자 아주 당연하게도 자신을 교수로 칭하는 남자가 이 조폐국을 상대로 4조원 규모의 강도를 계획한다. (이 부분에서 너무 기시감이 들었던 게 왜 유지태는 늘 음모를 꾸미는 역할인 걸까. 심지어 돈, 꾼에서의 역할과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이럴거면 되려 유지태를 현장 요원 역으로 배치하는 게 신선하지 않았을까.) 북한에서 이주했으나 JEA의 극심한 빈부 격차와 사회 혼란으로 인해 범죄자의 길로 들어선 도쿄, 북한의 악명 높은 수배범 베를린, 땅굴 은행털이범 모스크바와 싸움꾼 덴버 부자, 천재 해커 리우, 암살 조직에 있었던 헬싱키와 오슬로 등이 강도단에 합류하여 조폐국을 점거한 후 인질극을 벌인다. 이에 남북 공동 대응팀이 구성되고 남한에선 협상 전문가 선우진 경감을, 북한에선 특수작전부대 출신의 차무혁 대위를 담당자로 투입한다.

극은 1화에서부터 시리즈의 주축 인물인 교수와 도쿄의 범죄 동기를 경제 부흥에 가려진 자본주의의 양면성, 사회가 조장하는 집단적 갈등과 같이 동시대에도 유효할 사회적 문제에 섞어버리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남북에서 각각 차출된 선우진 경감과 차무혁 대위간의 이견, 남북으로 나뉘어 관리되는 인질들의 갈등, 선우진 경감의 전남편이 통일 한반도의 대권 주자라는 세부 설정들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맥락에서 적절히 분배된다.

다만 대개의 인질극에서 보았던 악당들의 심리 변화를 여러 인물들이 각자 가져가다보니 극의 무게 중심이 계속 바뀌는 느낌이 강하다. 또한 대사 처리에 있어 생활 밀접형 대사가 아닌 소설책에서 볼 법한 문어체로 이어지는 부분이 아쉬웠다. 위에서도 말을 했듯이 유지태의 역할과 대사처리가 유독 튀었던 건 그의 역할 기시감과 다른 인물들과의 톤이 달랐다는 것에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연기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이다.

토마토 소스와 고추장이 잘 버무려지면 양식과 한식의 장점이 남지만, 균형이 흐트려지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시즌 1에서의 아쉬움을 시즌 2에서 뒤집을 수 있을지 조금 기대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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