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동네 공터에는 애들이 모이기에 제격이었다. 밤 풍경은 그다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밤이 되면 무서운 형들이 있다고 얼씬도 못하게 했거든. 그래서 대낮에 공터에 가는 건 어쩐지 심장이 두근거리면서도 한편으론 안심이 됐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고 무엇보다 약속을 하지 않아도 또래 아이들을 공터에서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공터에서 한참이나 놀다보면, 뽑기 아저씨가 공터에 작은 곤로 두어개를 가져다놓고 연탄불을 피우기 시작했고 흩어져 있던 아이들은 슬금슬금 모이기 시작했다.
아저씨, 뽑기 얼마예요?
국자 가져와서 하면 백원, 여기 국자 쓰면 백오십원.
뽑기 아저씨가 내민 국자를 보고선 돈을 가진 아이들은 곤로 앞에 우 둘러앉아 국자와 설탕을 받아들기 시작했고, 까맣게 탄 국자가 내키지도 않고 당장에 주머니가 비어있는 아이들은 마음이 급해 저마다 집으로 달음박질을 치곤 했다. 빨간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가르는 것보다 부엌에 있는 국자를 챙기는 게 더 큰 일이었다. 딴에는 얼른 쓰고 다시 제자리에 놓으면 된다고 생각을 했지만 간과한 게 있었다. 설탕과 소다를 넣은 뒤 젓가락으로 한참이나 휘적거린 흔적은 지우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하지만 뽑기를 하는 아이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마음이 급해 뒷일을 생각할 겨를은 없었지. 국자 하나와 백원짜리 동전 여러개를 들고 다시 공터로 가면 단 냄새가 제법 퍼져있었다. 조금 기다리다보면 뽑기 아저씨가 자리 배정을 해주면서 나무 젓가락 하나와 설탕 두숟갈을 넣어주었다. 동그라미를 그리며 한참 젓다보면 설탕이 녹기 시작했고 그걸 다시 뽑기 아저씨에게 내밀면 소다를 젓가락 끝으로 콕 찍어주었더랬다. 진한 갈색에서 연한 갈색으로 바뀌고 국자 안 설탕이 부풀어오르면 스탠 쟁반에 탁 부어 누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었다.
바닥이 까맣게 탄 국자를 집에 들고 가면서도 뽑기의 달달한 맛에 혼날 걱정은 그리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맘때 동네 아이들이 죄다 뽑기를 한다고 우 몰려 있었고 쟤는 하는데 나는 왜 못하냐는 나름의 변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크게 혼나지 않고 그 겨울이 지나갔었다.
뽑기를 열심히 하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 뒤로 두해 정도 지날 즈음엔 탐구생활을 한다고 정신이 없었고, 애들이랑 놀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뽑기 아저씨가 와도 예전처럼 설레는 마음보다는 집에 있는 국자 하나를 써야하는 게 아까워서 그냥 지나쳤었다. 나이 먹고 생각이 깊어졌다기보단 집의 형편을 좀더 알게 됐다고 하는 편이 맞으리라. 그렇게 그 동네, 그 골목에 살던 또래 애들은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했고 뽑기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뽑기 아저씨는 다른 동네에 있는 공터로 갔던 걸까. 아님 다른 장사를 했던 걸까. 뽑기라는 말보다 달고나라는 말이 더 입에 붙은 요즘. 그 시절의 뽑기와 뽑기 아저씨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