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보낸 카톡이었다. 사실 놀랄 건 없었다. 연초부터 아니, 지난해부터 일을 그만 두시라고 말씀을 드려왔고 어머니도 이제 힘에 부친다고 말을 해왔기에 연말이 다가올수록 내심 일을 그만하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오랜 시간 근무하셨지만 해가 바뀔수록 부당하고 비정상적인 업무 지시가 많아졌기에 일을 그만두셨으면 했다. 자발적 퇴사지만 형식상으로는 계약 종료에 따른 퇴사. 따로 할 말은 없었다. 그냥 덤덤하게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답장만 건넸을 뿐.
'어머니는 왜 항상 바쁜 걸까.'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생각이었다. 아버지의 월급봉투가 얇아지고 누나와 나의 키가 커갈수록 어머니는 가계부를 더 많이 썼다. 고정 지출을 제외하고 아낄 수 있는 건 아껴보자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계부를 많이 쓰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밤 깎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경력 단절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 원래 다니던 대학 병원에 다시 들어가기엔 여러 상황들로 인해 엄두를 못 냈고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건 전봇대에 붙은 '밤 깎는 사람 구합니다' 전단지였다. 지금 기준에서야 그 당시 반찬값이나 식재료 값이 그리 높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벌이를 생각하면 그것도 큰 지출이었다. 밤 깎는 아르바이트부터 시작을 해서 인형 눈 붙이기, 결혼식장 뷔페 조리원, 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사, 복지회관에서 알음알음 배워뒀던 재봉 기술을 활용한 원단 재단사, 개인 병원 간호사,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 건물 관리원, 그 밖에도 단기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무일 등. 나도 열손가락 가득히 여러 직업군을 거쳤지만 어머니는 열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많은 일을 해왔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공부하고픈 것들을 조금씩 해오기도 했고. 아버지도 참 부지런히 살아왔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거나 건강이 안 좋아지셨기에 어느샌가 어머니가 가장역할을 해왔다.
수년 전, 어머니가 예식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때 근무복을 입고 정리를 하던 중 오랜 친구분과 마주친 날이 있었다. 마중하러 가서 마주쳤던 그날은 어머니의 표정도 힘들어 보였지만 무엇보다 그 마음이 참 고단하게 느껴졌다. 집의 사정을 다 말을 하자니 구차하고 그냥 삼키자니 속앓이가 심했을 그날. 해는 뉘엿뉘엿 지고 발걸음은 무거운데 별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어서 자리 잡아야겠다는 생각만 주구장창 했을 뿐. 그 이듬해 누나가 오래 준비했던 시험에 합격을 했고, 친척분들 축하 속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었다. "이제 너만 잘하면 된다." 그게 알게 모르게 압박이 됐었고 준비하던 시험에서는 아쉬운 결과를 얻었고, 다른 길로 틀어서 일을 시작을 했었다. 선택이라는 게 매번 좋을 수는 없었기에 여러 직업군을 거치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가 집에서 쉬게끔 해야겠다는 바람은 점점 옅어져만 갔다. 불가항력이라 해야 할까. 노력 부족이라고 해야 할까. 여러 일이 있었고 이젠 안정기를 찾은 게 겨우 숨을 돌리는구나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퇴직한다. 사실 퇴사라는 게 그리 반가운 단어는 아니다. 쓰임의 유통기한이 다 되었거나 쓰임이 있으나 회사의 사정에 의해 혹은 누군가의 계산으로 인해 짐을 챙겨 나와야 하는 거니까. 그 마음을 누가 다 헤아릴 수 있을까. 하지만 어제 어머니에게서 받은 카톡은 참 오랜 시간 기다려 온 말이었다. 퇴근 후 전화를 드리면서 재차 고생하셨다는 말을 건넸고 어머니는 아쉬운 것보다 후련하다면서 이젠 본인 건강을 더 챙기겠노라 말씀을 했다. 그저 자식의 입장에서 어머니가 그간 해온 고생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응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