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면 종종걸음을 하게 된다. 이런 계절이면 어김없이 두류시장에 있는 점촌 분식이 생각난다. 타지로 거처를 옮긴 뒤 그 생각은 더 깊어졌는데 원체 거리가 멀어진 탓에 마음만 굴뚝이라 그저 마른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다. 점촌 분식은 인근에 있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재학 중에 적어도 한번 이상은 들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단골이 있는 곳이다. 시쳇말로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무쇠라도 씹어먹을 나이대인 중고등학생들에게 유독 인기가 있는 이유는 맛도 맛이거니와 담아주는 양이 여간한 성인 남자 여럿이 먹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다른 분식 노점보다 더 많이 들르게 된 건 점촌 분식 이모님의 인정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이 든다.
점촌 분식은 떡볶이도 김치 어묵도 납작 만두도 순대도 튀김도 맛있었지만 우동이 참 별미였다. 노란 양은 냄비에 끓여내던 우동은 양도 참 많아서 두 명이 가면 대개 우동 하나, 떡볶이, 순대 1인분씩 시켜 먹었다. 남은 음식은 싸가기도 했고. 가게 크기를 줄인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떡볶이, 순대, 납작 만두만 팔고 있어서 참 아쉽다. 처음 들르고 25년 정도 지난 지금 떡볶이는 500원에서 2,000원으로, 순대는 1,500원에서 3,000원으로 가격이 올랐다. 가격이 오른 만큼 양도 더 많이 퍼주시는데 다른 가게에 비하면 비교적 적게 받는 편이라 언젠가 물어봤었다. 돈 더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도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가격은 못 낮춰도 양이라도 많이 줘야 한다는 이모의 대답이 오랜 시간 머리를 맴돌고 있다.
점촌 분식은 꼬박 25년째 단골이다. 오랜 시간 머무른 동네에서 잠깐 이사하거나 타지에서 지낸 시간을 제외하면 반절로 뚝 떨어지긴 하지만, 본가에 가면 꼭 들르게 되는 가게이기도 하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오면서 내 기억의 6할 정도는 점촌 분식이 채우지 않나 싶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꽤 떨어진 학교를 다녔는데 하굣길에서 꽤 돌아가야 했음에도 많이 갔었으니 말이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가족들과도 종종 들렀었고 어떨 때는 이곳에서 친구들이나 누나와 마주치기도 했었다. 그렇게 발도장을 찍은 덕인지 몰라도 오랜만에 들르게 되면 이모가 기억을 되새기면서 하고 있는 일은 잘하고 있는지 좋게 지내고 있는지 꼭 안부를 묻곤 한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는 게 참 고마운 즈음이기에 그 마음이 마냥 푸근한 정으로 느껴진달까.
점촌 분식은 큰 사건을 두 번 겪었다. 한 번은 고등학교 3학년 즈음, 또 한 번은 대학교 3학년 즈음. 첫 번째 사건은 노점 라인에 큰 불이 나 그 라인에 있던 가게 6곳이 불 탄 것. 시장에 불이 났다는 말만 듣고 차마 가지는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었던 때였다. 또 한 번은 시장의 불법 구조물과 노점상들 단속을 했던 때였다. 오랜 시간 장사를 하셨던 분들이 내몰리게 됐다는 소식을 친구들한테서 들었고, 인터넷 기사로 본 사진엔 점촌 분식 이모의 모습이 있었다. 그날 인터넷 기사로 접했던 점촌 분식 이모의 모습은 낯설었다. 그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있던 분이 바닥에 앉아 우는 모습은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가족뿐만 아니라 종종 같이 가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제 시장 분식집들 다 사라지냐고. 불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밀기엔 너무 잔인하지 않냐며.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분들한테 무슨 짓이냐고. 괜히 그 옆에 들어선 신축 아파트에 원망을 퍼부었었다. 고작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와 내 친구들이 세세히 알려고 하기엔 무거웠고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저 어른들의 사정이겠거니 생각을 할 뿐. 그때 이후 1년 정도 지나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이모들이 한 분 두 분 돌아오셨단 이야기를 들었다. 점촌 분식 이모도.
겨울이 되면 누구나 주머니 속에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지만 카드로 계산하는 게 너무 익숙해진 때이기에 분식이 생각나면 해 먹거나 프랜차이즈에서 시켜 먹게 된다. 분식점이 기업화되면서부터는 예전 학교 앞 분식집이나 시장 분식집은 점점 추억으로 가물어간다. 그 많던 분식집의 이모들도 은퇴하시거나 나이가 많으셔서 운영을 하시기엔 체력적인 여유가 없으리라. 프랜차이즈 분식집이 예전 분식집을 대체하기엔 가격대라던지 맛이라던지 여러모로 아쉽기도 하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건 닭도 못 된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그리움과 아쉬움이 비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유독 추운 오늘은 그 맛있던 점촌 분식 우동이 생각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