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때로 고통보다 더 무겁다

영화 [한공주] 리뷰

by 권씀

한 사람의 삶이 사건으로 규정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han-gong-ju

[한공주]는 성폭력이라는 극한의 사건을 다루지만, 그것을 자극적 서사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사건 이후의 시간”에 집중한다. 피해자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 살아가려 할 때, 사회는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그 장면들 속에서 우리는 피해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게 된다.


영화는 철저히 공주의 시선에 기대어 움직인다. 그러나 그 시선은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지 않는다. 공주는 울부짖지 않고, 분노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만 존재한다. 그 존재 자체가 침묵의 무게로 다가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침묵이 ‘말할 수 없음’의 결과이자 동시에 ‘말해도 들리지 않음’의 증거라는 사실이다. 피해자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듣지 않기에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29.jpg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주변의 반응’이다. 학교는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또래들은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소문을 소비한다. 심지어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어른들조차, 공주의 상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사건을 빨리 잊고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집단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피해자의 고통은 사회의 일상성을 회복하기 위해 은폐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묵직한 사회학적 질문을 던진다. “피해자의 삶을 지탱하기보다, 우리 사회는 왜 늘 사건의 망각을 서두르는가?”

집단의 기억은 늘 불편한 부분을 삭제하며 재구성된다. 우리는 가해자를 단죄하고 나면 사건이 끝났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삶은 그 이후에도 계속된다. 공주는 여전히 같은 세계에서 밥을 먹고, 수업을 듣고, 계단을 오른다. 그녀가 사건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은, 개인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가 그를 품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공주]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영화는 ‘위로’라는 쉬운 언어를 거부한다. 눈물을 강요하지 않고, 감정을 과잉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틈새들을 차갑게 응시한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교실, 공허하게 울리는 종소리, 대답 없는 밥상 위의 침묵. 그 순간들은 단순한 장면을 넘어, 피해자가 겪는 ‘사회의 부재’를 상징한다.

20181025000080.jpg

영화는 관객에게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피해자는 왜 늘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사건 이후에도 피해자의 입을 끊임없이 의심하는가? 그녀가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강하니 괜찮을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는가?


[한공주]는 한 개인의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이 사회가 피해자를 어떻게 배제하고, 어떻게 침묵시키는지에 대한 집단적 자화상이다. 사건을 망각의 바다에 떠밀어 보내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피해자를 예비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긴 여운이 남는 이유는, 그 여운이 단순한 감정적 울림이 아니라 윤리적 불편함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의 공주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목소리를 잃은 수많은 ‘한공주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ED%95%9C%EA%B3%B5%EC%A3%BC.jpg?type=w800

결국 이 영화는 우리 각자에게 물음을 던진다.
“당신은 피해자의 곁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또다시 침묵의 편에 설 것인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입을 봉인한 자리, 말의 무덤 위에 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