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혈연보다 넓은 품을 지닌다.

영화 [계춘할망] 리뷰

by 권씀

섬은 늘 돌아온 이를 품는다.


바다는 잃어버린 것을 감추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되돌려주기도 한다. 영화 [계춘할망]에서 12년 만에 나타난 아이는 계춘이 평생 기다려온 손녀 혜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드러난 진실은 그녀가 다른 혜지라는 사실이었다. 혈연의 끈은 무너졌으나 계춘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더라도 함께 살아내는 사이야말로 가족임을 영화는 고요하게 일깨운다.




대리 귀환의 서사


민속에서 귀환은 단순히 돌아옴이 아니다. 떠난 이가 공동체와 다시 잇대어지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그러나 [계춘할망]의 귀환은 어긋나 있다. 돌아온 아이는 진짜 손녀가 아니지만 계춘은 그녀를 품는다. 이것은 혈연의 귀환이 아닌 대리 귀환이다. 민속에서 흔히 발견되는 대체와 가짜 귀환의 모티프는 종종 더 큰 울림을 남긴다. 사실의 정확성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섬과 여성적 공동체


제주는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중심에서 밀려난 공간이었다. 그러나 영화 속 제주는 단절의 장소가 아니라 돌봄의 공동체로 그려진다. 장터의 소란과 해녀들의 숨비소리, 마을의 소박한 풍경은 배경이 되지만 중심에는 계춘이 있다. 그녀는 아버지의 권위도 가부장의 질서도 없이 손녀를 보듬는다. 여성적 연대와 모계적 공동체가 서사의 중심을 차지한다. 연대는 단순한 가족 관계가 아니라 모계적 공동체가 지닌 힘을 드러낸다. 가족은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될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계춘은 단순히 할머니가 아니라 섬의 상징이다. 섬은 바다에 둘러싸여 외부로부터 고립되었으나 그 고립 속에서 견고한 품을 만들어왔다. 섬은 타자들을 배척하는 대신 품어내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지켜왔다. 계춘의 품은 바로 그 섬의 품과 닮아 있다.




일상의 굿과 치유의 시간


민속에서 굿은 잃어버린 영혼을 불러내고 상처를 달래는 행위다. 영화 속 계춘은 굿을 벌이지 않는다. 대신 밥을 짓고 아이를 기다리며 웃음을 나눈다. 그 평범한 행위들이 하나하나 일상의 굿이 된다.아온 아이가 다른 혜지였다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계춘의 일상은 이미 상처 입은 공동체를 보듬고 치유하는 의례로 작동한다.

미술 선생님의 역할


이야기 한켠에는 미술 선생님이 등장한다. 그는 계춘과 혜지의 삶에 직접적으로 깊게 개입하지 않지만 중요한 연결 고리를 제공한다. 그의 시선은 도시와 섬을 이어주는 통로이며 혜지의 내면을 조금씩 열어주는 작은 매개다. 기능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그는 ‘조력자’의 위치에 선다. 공동체가 치유의 과정을 밟아가는 데에 외부인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데 그는 그 외부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는 중심을 차지하지 않고 곁에서 지켜본다. 이는 영화가 남성 영웅 서사를 반복하지 않고 여성과 공동체의 목소리를 중심에 두려는 선택으로 읽힌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질문


[계춘할망]은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혈연으로 증명되지 않아도 서로를 돌보고 살아내는 관계가 진짜 가족이 아닐까. 오늘날 흔들리는 한국 사회의 가족 제도는 계춘이 보여준 품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섬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혈연보다 넓은 가족의 의미를 본다.




혈연은 끊어질 수 있지만 마음의 연대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계춘할망]의 이야기는 그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끝내 남는 것은 돌봄과 기다림 그리고 서로를 품는 품이라는 단순한 진실이다. 피보다 넓고 이름보다 깊은 관계의 힘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귀환의 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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