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의심 사이에 울리는 비명

영화 [곡성] 리뷰

by 권씀

비가 내린 뒤 흙냄새가 가득한 시골 마을. 산자락에 걸린 안개는 쉽게 걷히지 않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의심이 번져 있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 은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작한다.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는 공간이, 곧 끝없는 불안과 공포의 무대로 변해버린다. 2016년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단순한 호러 이상의 충격을 던졌다. 그것은 ‘누가 범인인가’를 묻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믿는가’를 끝없이 되묻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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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


영화의 주인공 종구(곽도원)는 작은 마을의 경찰이다. 그는 사건 해결 능력도 부족하고, 두려움에 쉽게 흔들리는 평범한 인물이다. 그러나 마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살인과 광기가 번지자 그는 그 중심에 서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일본인 낯선 자를 의심하고, 종구 역시 점점 그 의심에 사로잡힌다. 무속인이 나타나 굿판을 벌이고, 종교적 해석들이 충돌하며, 종구의 판단은 점점 흐려진다. 결국 그는 가족마저도 구하지 못하는 비극에 빠져든다.


[곡성] 의 서사는 단순한 범죄 추리극의 형태를 띠지만, 실상은 미궁 속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가는 장치에 가깝다. 단서들은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그 어떤 것도 확실한 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단서가 늘어날수록 의심은 커지고, 믿음은 무너진다. 관객 역시 종구처럼 흔들린다. 우리는 보고 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왜곡인지 끝내 알 수 없다.




공포의 본질 — 믿음의 붕괴


이 영화의 가장 큰 공포는 초자연적 존재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의 붕괴’다. 인간은 언제나 세계를 이해하려는 틀을 가지고 산다. 누군가는 종교로, 누군가는 전통 의례로, 또 누군가는 합리적 이성으로 세계를 해석한다. 그러나 [곡성] 은 그 모든 틀이 동시에 흔들리는 순간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구원과 무속의 제의는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세계를 설명하려 하지만, 그 충돌 속에서 인간은 판단 능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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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구는 일본인을 악마라 단정했다가, 무속인을 믿었다가, 다시 의심하며 흔들린다. 그 혼란 속에서 그는 결국 가장 사랑하는 딸마저 의심하고, 그 순간 그는 완전히 무너진다.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괴물보다 무서운 것은, 내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시대의 불안과 영화의 울림


[곡성] 이 개봉한 2016년은 한국 사회에 깊은 불신이 퍼져 있던 시기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와 제도의 무능에 대한 불신, 메르스 사태로 인한 집단적 공포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확실한 정보를 원했지만, 오히려 정보는 뒤섞이고, 진실은 모호해졌다. 그 속에서 의심과 혐오가 증폭되었다. [곡성] 의 공포는 단지 스크린 속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대 한국 사회가 마주한 불안의 거울이기도 했다.


영화 속 일본인 낯선 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외부인 혐오’의 집단적 감각과도 맞닿는다. 또한 무속과 종교가 충돌하는 장면들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종교적 갈등과 불신을 떠올리게 한다. 나홍진은 특정한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시대의 공기를 그대로 스크린 위로 끌어올렸다.




나홍진 영화 세계의 집대성


전작인 중 하나인 [추격자] 에서 그는 인간의 본능적 잔혹함을 드러냈고, [추격자] 에서는 배신과 불신의 구조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리고 [곡성] 에 이르러, 그 주제를 종교적·초자연적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결국 그의 영화 세계는 일관된 흐름을 가진다. 인간은 언제나 믿음을 상실하고, 불신 속에서 서로를 파괴한다. [곡성] 은 그 흐름의 집대성이자, 더 깊은 심연을 향한 도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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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의 영화에는 구원자가 없다. 종구는 경찰이지만 무능하고, 무속인은 구원을 약속하지만 결국 의심스럽고, 일본인은 악마일 수도 있지만 피해자일 수도 있다. 구원은 끝내 주어지지 않고, 믿음은 끝내 회복되지 않는다. 영화는 이처럼 해답 없는 질문을 남기며 끝난다.


잊히지 않는 장면들


가장 압도적인 장면은 무속인과 일본인의 의식이 교차 편집되는 대목이다. 북소리와 주문, 저주의 몸짓이 서로 맞물리며, 관객은 어느 쪽이 진실인지 혼란에 빠진다. 종구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 의심으로 일그러지고,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공포의 정체는 외부의 존재가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져가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또 하나 오래 남는 장면은 마지막의 일본인이다. 그는 악마일까, 아니면 단지 오해받은 이방인일까. 나홍진은 끝내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답 없는 결말이야말로 영화의 진정한 힘이다. 우리는 결코 알 수 없기에, 영화는 스크린이 꺼진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끝내 알 수 없는 질문


[곡성] 은 단순한 호러·오컬트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믿음을 잃는 순간 얼마나 취약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심리적 공포를 표현했으며 동시에 불신과 혐오가 뒤엉킨 시대의 초상을 담아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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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지막에 묻는다. “너는 누구를 믿을 것이냐?” 이 질문은 종구를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스크린 앞의 우리 모두를 향한 것이다. [곡성] 이 남긴 울림은 바로 그 질문의 무게다.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이 무너진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하게 될까. 곡성의 비명은 스크린 속 마을의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내 마음속에서 계속 울리는 메아리다. 답을 알 수 없기에, 영화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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