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을 깨는 사람과 룰을 지키는 사람

나의 공황 일기

by 권씀

신입 직원이 오면 일정 기간을 두고 적응을 도와주는 게 우리 회사의 '룰'이다. 그전부터 있었던 내규였고 내가 이직해 왔을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 부분이다. 적어도 내가 거쳐온 회사들은 이 '룰'이 존재했고 짧게는 1주, 길게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두고 적응을 도와줬기에 내 입장에서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입사 후 자리 배치, 식사, 기초 교육 등이 이뤄졌고 향후 현장 조사 계획에 대해서 전달을 한 뒤 궁금한 부분이 있는지 물어보니 "그럼 내일부터 현장 조사에 나갈 수 있는 건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전달력이 약해서 이렇게 되물어보시는 거구나 싶어서, 2주 뒤부터 현장에 나갈 예정이니 사무실에 계시면서 저희 기초 자료, 보고서, 그 외 용어 등을 정리한 서류들을 봐주십사 재차 당부했다. 말이 조심스러웠던 건 회사 내에서는 직급이 전부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나이 차이가 났기에 부모님이나 삼촌에게 말을 하듯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때만 하더라도 낙하산인지도 확실치가 않았고 설령 낙하산이라 하여도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 많은 이를 뽑은 걸 언제까지고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따르르릉!

"어. 나 회사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어. 아하하하. 그래. 시간이 언제 된다고? 알았어. 말하고 가면 되지."


고요한 가운데 그의 목소리가 유독 우렁찼다. 전화가 길게 이어지고 업무 중이던 사람들의 고개는 점점 그에게로 향했다. 시선을 느끼지 못 한 건지 사람들의 눈치는 아랑곳 않고 전화는 한참 동안 이어지고 나서야 종료됐다. 다들 눈치만 보고 있길래 그래도 내가 이야기해야겠다 싶어서 말을 건넸다.


"저, 선생님, 개인 전화 용건은 밖에서 받아주세요."

"왜 그러시죠?"

"... 여긴 사무 공간이고 업무 전화 외에는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다들 업무 중에 선생님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전 괜찮은데요?"

"사무실 기본 매너이니 지켜주세요."

"흠... 빡빡하네요."


그가 입사한 지 고작 3일 차의 일이었다.




얼마 뒤 관외 출장이 잡혀 다른 직원들과 함께 다녀온 다음날. 다른 팀원이 나에게 이야기할 게 있노라며 면담 요청을 했다.


"팀장님, 다른 게 아니라 그분이 좀 자유분방한 것 같아요."

"무슨 일 있었나요?"

"저희가 사무실 근무할 때 아무래도 외지에 있다보니 점심시간 부여를 좀더 하는 편이잖아요?"

"그렇죠."

"11시 30분 되서 다들 식사하고 오시라고 하려고 하는데 그분이 안 보이시더라구요."

"화장실 가셨던 건 아니구요?"

"네. 그러고 나서 1시가 지나서 20분 쯤인가 되서 들어오셔서는 커피 사왔다고 돌리셨어요."

"그럼 커피 사고 밥 먹는다고 점심시간을 두시간 가까이 쓴 거네요."

"그렇죠."

"음...근데 왜 저한테 이야기 안 하셨어요?"

"출장 간 거 뻔히 아는데 전화하기 좀 그래서..."

"일단 알겠어요."


이 대화를 마친 후 다음날이 되서 따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회사 점심시간 알고 계시냐고.


"네. 아는데요. 커피가 맛있는데라고 해서 일찍 나갔습니다."

"선생님, 업무 시간 외에 그렇게 나가시면 근무지 이탈입니다."

"예예.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선임자한테 나가면 나간다고 이야기 하셔야 하구요."

"네."

"일찍 나간 건 그렇다 치고 보통 직장인들 점심시간 1시까지 아닌가요?"

"커피를 여러잔 사서 다른 분들 드린다구요."

"선생님, 커피 안 드시는 분들도 계시고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친해지고 싶어서요."

"친해지는 건 업무적인 부분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거니까 이제 그러지 않으셨음 해요."

"전 그러고 싶은데요?"

"선생님, 적어도 이 회사 내에선 제 말을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예예."


나는 이 시점에서 과연 이 사람이 현장에 나가서는 어떻게 행동할까 궁금해지는 한편, 어떤 말을 해도 건성으로 듣는구나 싶은 생각이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고작 두어차례 이야기를 했을 뿐이지만, 예순이 넘은 나이에 이렇게나 사람이 제멋대로인데다가 철딱서니 없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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