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황일기
안전 관련 이야기가 있은 뒤 나와의 대화 물꼬가 터졌다고 생각했던 건지 회사에서 만들어 놓은 규칙뿐만 아니라 타 직원에 대한 그의 개인적 생각을 내뱉는 일이 잦아졌다. 그걸 다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현장 동행이 하루 종일 이어지다 보니 안 들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 종국에는 대답이 건성이 되기 시작했다. "아. 네. 그렇군요. 아.. 네.." 이런 류의 무미건조한 대답들. 정제되지 않은 말은 쉴 틈 없이 쏟아졌고 나는 그걸 '쓸모없는 수다'라 인식했다.
주변에서는 그러려니 하라는 말과 다른 팀원이랑 붙여서 보내라는 말을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신규 직원에 대해 사수 또는 팀장이 같이 현장을 다니며 케어해야 하는 기간이 있는데, 기존 팀원이 있긴 했지만 입사 시기가 불과 3개월 남짓이라 맡겨놓기엔 다소 어려웠고 기존 팀원도 케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 지나친 노파심에서 비롯된 어려움이었을 수도 있지만 기존 팀원과 신입 팀원의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기에 책임과 부담감을 떠넘기기엔 내 자신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직장이고 회사라 해도 말이다. 그렇게 듣는 귀가 버겁다 싶을 때 팀원 둘을 함께 챙겨서 다니기 시작했다.
현장을 나가면서 대개의 경우 본인 업무 또는 회사 내 일정 등에 대해 물어보면 내가 답해주고, 반대로 우리 팀이 해야 할 업무 등을 알려주면서 우선 업무적인 친함을 목적으로 진행해 왔다. 개인의 친해짐은 그다음으로 미뤄두고. 이건 내 개인 성향이기도 하고 이전에 업무 외적으로 친해진 직원들 간의 다툼이 있었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공공기관의 특성일지도 모르겠다. ~~ 씨라는 호칭보다 ~~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건. 어떤 회사든 그 호칭을 따르는 것부터 업무의 시작이라 생각하는데, 그가 기존 직원을 부르는 호칭은 "저기, 여기요, ~~ 씨"였다. 본인보다 연배가 한참이나 낮고 선생님이란 호칭이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재차 당부를 했다. 저희가 쓰는 호칭이 정해져 있고 이것까지 신경 쓰냐 하시겠지만, 저도 입사하고선 계속 그렇게 배워왔으니 양해 바란다고. 그래도 다행인 건 이건 비교적 수월히 받아들였다. 문제는 먼저 입사한 직원을 존중하는 태도가 일절 없었다는 것.
3개월 차이든 3일 차이든 먼저 입사한 사람이 선임이 되고, 업무 하나를 하더라도 먼저 배운 게 있으니 그걸 알려주는데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거기에다 사적인 질문을 하면서 곤란하게 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모님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년생이세요."
"부모님이 나보다 어리시네~"
"네?"
"그냥 하는 소리예요~ 뭐 어떻게 여행은 좀 다니셨나?"
"여기저기 다녔어요."
"어디? 난 베트남 다녀왔는데 좋더라고. @@씨는 그런데 안 가봤지?"
이쯤에서 반말이 슬쩍 나오고 개인 영역을 파고 들길래 내가 막아야 했다.
"선생님, 존칭 써주시고요. 개인 사담은 뒤로 두시고 업무 시간이니 오늘 가는 곳에 대해 숙지 부탁드립니다."
"가벼운 이야기도 하지 말라는 건가요?"
"현장 가기 전에 특이사항 숙지하라는 건 제 업무 지시였고, 아직 선생님이 그걸 완료했다는 보고를 안 하셔서요."
"현장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못 하나요?"
"전 업무적으로 친해졌으면 합니다. 개인사 부분으로 친해지는 것 말고요."
"예~예~"
그 후 현장에 도착해 여러 가지를 점검하는 동안 특이사항을 체크하면서 받아 적으시라고 돌아보니 그는 팔짱을 끼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다시 현장에서 봐야 할 것들과 팀원이 해야 할 일을 전달하고 다른 현장으로 이동해서 또다시 같은 이야기 반복. 그런 패턴으로 일주일을 일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내가 급히 연차를 쓰게 돼서 팀원들은 그날 현장이 아닌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해야 할 일을 톡으로 전달하고 그다음 날 출근했더니 기존 팀원이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무슨 일 있으셨나요?"
"네... 팀장님, 저 어제 밥 못 먹었어요. 그분 때문에."
"음... 무슨 상황인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점심시간이 되어 신입 팀원이 기존 팀원에게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제안을 했는데, 밥을 챙겨 와서 따로 먹겠다고 의사 표현을 했으나 '그딴 거'먹지 말고 본인이 밥 살 테니 나가자며 강제로 끌고 나갔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팀장이 제지를 하였으나 그걸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나갔는데 밥이 넘어갈 리도 없고 식사 시간 내내 내 욕을 했다는 것. 내 욕을 하는 건 상관이 없는데 다른 사람의 점심시간을 빼앗은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없었던 시간에 벌어진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건 무리가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