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는 종종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자아가 관계에 끌려가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우리는 점점 어떤 관계가 나를 확장시키는지, 어떤 반응이 나를 소모시키는지 알아간다. 그 인식이 쌓일수록 자아는 조금 더 능동적인 상태를 띤다.
자아를 지킨다는 말은 흔히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외부의 말이나 상황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유지하는 모습 말이다. 하지만 실제의 자아는 그렇게 고요한 상태로 오래 머물지 않는다. 관계와 상황 속에 놓이는 순간, 자아는 이미 반응하고 있고, 그 반응은 크든 작든 이전의 나를 조금씩 바꿔놓는다.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방식이다. 모든 영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아는 쉽게 소진되고, 반대로 지나치게 차단하면 관계는 점점 단절된다. 그래서 자아를 지킨다는 일은 외부를 막아내는 데 있기보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흘려보낼지 선택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런 맥락에서 닫힘과 열림은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닫혀 보이던 사람이 어떤 순간에는 쉽게 흔들리고, 열린 태도를 가진 사람도 특정 지점에서는 단단히 닫히는 이유는 자아가 늘 관계의 결에 따라 반응하기 때문이다. 닫힘은 회피가 아니라 조정이고, 열림은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라 판단에 가깝다.
결국 자아를 이해한다는 것은 고정된 모습을 정의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반응해왔는지를 돌아보는 일에 가깝다. 언제 닫혔고 언제 열렸는지, 무엇 앞에서 흔들렸고 무엇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그 선택과 조정의 흔적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자아는 단단히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계속 다듬어지는 상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