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화 [시인의 사랑]

사랑 또 사랑 그리고 사람

by 권씀

시인의 삶은 꽤나 고단하고 서글프다. 그럼에도 정신적인 갈증과는 달리 몸은 지구의 중력을 거스를 수 없어서 입에 들어오는 것을 모두 삼키다 보니 비대해진다. 툭- 건들면 터질 것 같은 풍선 같은 배를 한 아름 안고서 말이다. 영화 [시인의 사랑]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시인의 모습답지 않은 뚱뚱한 시인의 일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시인에게 일상은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는 토대이자 어떻게든 밥벌이를 해야 하는 곳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밥벌이를 하기 위해 집과 학교를 오가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도넛 가게. 시인의 집 맞은편에 새로 여는 도넛 가게는 시인에게 영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정착에 이르기까지 시인이 쓰는 글의 모태가 되는 공간에 다소 이질적인 풍경이 들어온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 빼!라고 하기엔 시인의 현실은 참혹하다. 방과 후 학교에서 글쓰기 교실 강사를 하지만 벌이가 영 신통찮고 그런 그에겐 아득바득 살 궁리를 하는 아내가 있다. 그럴듯한 벌이를 하는 것이 아닌 시인에게 새로운 문명이란 그저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적인 아내를 보며 이상적인 시인은 혀를 찬다. 한 때는 너의 바다에서 헤엄을 쳤었노라며.

영화 [시인의 사랑] 中, 시인은 도넛을 먹다 잠들었다.

영화는 밥벌이 못 하는 시인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다 도넛 가게를 기점으로 새로운 사건들을 나열하며 보여준다. 시인의 일상에 침범한 도넛 가게는 시인의 시상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어느 날 라면을 끓여먹다 아내가 들이밀다시피 입에 구겨 넣은 도넛은 시인의 마음을 흔들고 그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도넛 가게로 이끈다.

영화 [시인의 사랑] 中,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싸매는 시인의 모습 뒤로 소년이 보인다.

도넛 가게에서 사서 길을 다니며 먹기도 하고 시를 쓰기 위해 도넛 가게 안에서 도넛을 시켜놓고 커피와 함께 먹기도 하는데 문득 길을 지나는 노인의 모습에서 시상을 떠올려 글을 쓰던 도중 막혀버린다. 그러던 중 도넛 가게의 소년이 나지막이 말하는 "할아버지도 고아구나."라는 말에 막힌 부분을 마저 쓰게 되고 정기 모임을 가지던 곳에서 그 시를 발표하게 된다. 그간 일상을 그려냈지만 다소 단조로운 시를 쓰던 시인에게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만 보려 한다는 말을 했던 여성 회원은 이제야 세상을 본다며 감탄을 한다. 그렇게 도넛 가게의 소년은 시인의 페르소나가 된다.

영화 [시인의 사랑] 中, 소년과 시인의 같은 걸음.

페르소나가 된 소년에게 관심을 갖던 시인은 자주 가게에 들르게 되고 그의 직관적이고 직설적인 말을 들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상을 조금씩 깨뜨린다. 그렇게 소년의 말에 관심을 갖다가 소년의 일상에 호기심이 생기고 그의 삶에 조심스레 하지만 과감히 개입을 한다. 하지만 시인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내는 그것이 영 마땅찮다. 시인을 구박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그를 사랑하는 아내는 소년과 자주 만나는 시인에게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영화 [시인의 사랑] 中, 정자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은 시인과 아내.

사실 시인은 정자가 없다. 그나마도 몇 마리 있었지만 움직임이 거의 없는데 밥벌이도, 잘 팔리는 시를 쓰는 능력도 없는 그에게 아내는 늘 따뜻하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무능력 남편 이건만 아내의 구박은 잔소리가 아닌 애정인 것이다. 하지만 시인에게 그런 애정 담긴 구박을 하는 아내와의 일상은 영 지겹고 단조로운 것에 불과하지만 소년과의 시간은 그에게 영감을 주는 즐거운 것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일탈은 일탈에 지나지 않고 그에게는 현실이 있다. 아내와의 생활이라는 현실이.


시인이 가진 시인으로서의 고뇌는 인간으로서의 고뇌와는 그 결이 다르다. 시를 잘 쓰는 것은 글의 본질에 다가서는 걸음일지언정 먹고사는 것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고뇌는 그야말로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먹고 자고 싸고 혹은 번식을 하고. 영화 [시인의 사랑]은 이런 시인의 고민을 여과장치 없이 보여준다. 웃을 수 있는 장치도 몇 개가 있지만 그마저도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것이다. [시인의 사랑]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시인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주제라면, 그것이 인류애적이든 이성이든 아니면 동성이든 사람으로서의 사랑을 의미한다. 시인도 사람이다라는 주제라면 제목과는 달리 다소 역설적이다. 시인의 사랑은 살아있는 모든 것과 지나치는 모든 것이지만, 결국엔 반복되는 하루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사는 일은 퍽이나 고단한 일이다. 그럼에도 고단함 사이에 웃음과 울음이 공존한다. 어쩌면 영화 [시인의 사랑]은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