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대나무숲이 필요해

by 권씀

기분이 좋지 않을 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하늘이 맑으면 맑은대로 궂으면 궂은대로 내 기분에 따라 부정의 방향으로 흘러가지. 잠이라도 푹 잤으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아서 온 신경을 기분이 좋지 않은 원인으로 쏟아버리지. 빗방울이 후두둑 쏟아지는 날이 되면 우산도 성가셔서 그저 맨몸으로 비를 맞고픈 충동을 느껴. 바닥에 떨어져 산산히 부서지는 그 빗방울처럼.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빗방울 아래 있으면 좋지 않은 마음이 산산히 부서질까 하는 기대감에.

내 기분이 내 태도가 되어선 안된다는 걸 알지만, 욕짓거리마저 내뱉지 못할 때는 기분이 태도가 되어버려. 애써 외면했던 것들을 쭉 나열해 다시 되새김질을 해. 결국 내 마음을 내가 갉아먹고 있는 걸까? 어디엔가라도 말을 내뱉으면 군말없이 담아주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 사람 말고 장소 말이야. 내 속내를 그 사람에게 쏟아내면 듣는 그 사람은 내 짐을 떠맡아버리는 꼴이 되는 거잖아. 그래서 자그마한 양동이든 아님 공터든 소리를 막 질러버릴 수 있는 게 필요해.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엔 한적한 곳으로 향해 가삿말 없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비 구경을 해. 허투루 쓰게 될 신경이 또 거슬려버려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바깥 공기를 마주하고 한참이나 웅크리게 되지. 아무런 내용 없는 음악을 들으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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