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오해
아빠는 건널목 맞은편에 서 있었다.
나와 동생은 손을 잡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동생의 손을 잡아본 것 같았다.
사실 손을 잡고 있었다기보다는,
나는 동생의 손을지팡이처럼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놓는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처럼.아빠는 우리를 보자마자
“애기야—!”
하고 신나게 양팔을 흔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만 작게 부르라고, 창피하다고 투정아닌 투정을 부렸을 텐데
그날은 그럴 기운도 없었다.
아빠가 원하는 만큼 그냥 그렇게 반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동생의 손은 놓을 순 없었다. 동생도 위태로워 보이는 나의 손을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남은 한쪽 팔로만 서툴게 흔들었다.
신호가 바뀌자 아빠는 우리 쪽으로 뛰어왔고, 우리 둘을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이제 우리는
아빠의 품에 다 들어가지 못할 만큼 커 있었고,
아빠는 조금 작아진 것 같았다.
카페로 가는 길,
우리는 아빠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아빠의 손을 잡았다.
아빠는
얼마 만에 이런 날이 온 건지 말하지 않아도 감격스러운과 벅참이 얼굴에 다 쓰여 있었다.
아빠의 손은
여전히 컸고,
여전히 따뜻했다.
카페에 앉자마자 아빠는 내 머리를 보며
농담을 시작했다. 군대 갈 준비냐고, 누구의 부름을 받고 왔냐며,
동생이 새로운 남자랑 있는 줄 알았다고.
늘 그렇듯 우리는 투닥거렸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아빠는 어찌된 영문인지 아메리카노는 몸에 안 좋다며 과일주스를 시켰다.
나는 내 커피 뺏어먹지 말라고 농담했고,
아빠는
내 아메리카노를 핫인지도 재차 확인했다.
물론 동생의 아메리카노는 아이스였다.
나중에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아빠는
내가 임신이라고 생각했던거 같았다.
그래서
가기 전 내 얼굴이 유난히 우울했던 것도,
캐나다에 갔다가 한 달 만에 돌아온 것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빠는 자기 과일주스를 내 앞으로 밀어줬다.
내가 산모라고 생각했을테니까.....
잠시 후, 아빠가 물었다.
“박서방은?”
그때였다.
말해야 할 시간이 왔다.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몸이 급격히 차가워졌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공황이였다.
아빠는 놀랐다.
동생은 내 가방에서 약을 꺼내 자신의 차가운 아메리카노와 함께 내 입에 가져다줬다.
나중에 아빠가 말해줬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아빠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아…
'뭔가 잘못됐구나. 내 딸이 정말 원치 않는건 안되겠구나 와 유산한건가....'
몇 분쯤 지났을까.
아빠는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 말에 나는 울부짖었던 것 같다.
괜찮지 않다고. 아무것도 괜찮지 않다고.
동생은
내 옆에서 함께 울었고,
차갑게 떨고 있는 내 손을 아까처럼 꼭 잡고 있었다.
그리고
동생이 입을 열었다.
“아빠, 형부 바람났어.”
…………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나를 안고 있던 아빠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반복했다.
무엇이 그렇게 미안했을까.
결혼을 허락한 것,
나를 캐나다로 보낸 것,
왜 그렇게 우는지
제대로 묻지 않은 것,
가기 전 만났을 때
눈치채지 못한 것,
아니면
임신이라고 오해한 것까지.
아빠는 주문처럼 말했다.
“애기야,
숨을 다 뱉어라.그리고 다시 들이쉬어라.
숨을 참지 말고일단 다 뱉어라.
그래야 다시 들이쉴 수 있다.”
나와 동생은 나에게 있었던 일 그리고 동생이 나를 도와 그 회사를 찾아가고, 만났던 일 등....
그동안 있었던 일을 천천히 말했고, 이혼을 해야 할지에 대한 내 두려움도 꺼냈다.
아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이혼해라, 애기야. 그게 맞다.
한 번 의리를 저버린 사람은 또 배신한다.
아빠는
널 그런 놈이랑 같이 두고 싶지 않다.”
그 말로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사라졌다.
숨을 다 뱉었다. 그리고 다시 들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