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말하러 가는 길

불효녀가 되겠지...

by 권두팔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눈물은 세 번이다.

첫번째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그때도 아빠는 내 앞에서 크게 울지 않았다.

꾹 참고 계셨다. 어렸지만, 아빠의 슬픔을 느껴서 인지...

괜히 아빠앞에서 쓸데없이 어리광만 부리며 웃게 해드리려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장례식 마지막날....아빠는 무너지셨다.

살면서 누군가가 그렇게 많이 우는 걸 처음 본 날이였다.

그리고 몇일을 내내 우셨다.

우리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5남매중 막내로 자랐고,

슬픔을 당장 표현하기보다는

몸 안으로 밀어 넣다 넣다 쌓여서 폭발하는 눈물 많은 사람.


두 번째는 동생의 결혼식 날.

눈에 넣어도 안아프다는 막내딸.

아빠는 자신이 막내여서, 막내의 서러움을 안다며

동생에게 정말 좋은 아빠였다. (물론 나에게도)

굳이 안그래도 되는데, 나와 똑같은 옷을 사주고, 동생이 갖고 싶다고하면 수준에도 안맞는 책을 사주고,

감기라도 걸리면 아빠는 회사도 가지 않으시고 동생을 돌보셨다.

그런 막내딸이 시집가던 날...

절대 안 울겠다던 아빠는 동생 손을 잡자마자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앉아서는 천장만 바라보고 계셔서,

나는 내내 아빠를 놀렸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내 결혼식 날이었다.

그날, 나는 보지 못했다.

심지어 아빠는 절대 결혼 하지 않을 걸 처럼 굴었던 나를 놀리기 까지 했기에

나는 아빠가 울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가 우는 얼굴을 나는 끝내 보지 못했다.

그날도 내앞에서는 참았을테니....

아빠는 내 앞에서

역시 천장을 수십 번 올려다보며

눈물을 참으셨던거 같다.

나도 아빠를 닮아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식장에 있던 사람들은 아빠가 울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누가 보면

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줄 알았을 만큼

아빠는 자주, 오래 울었다고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사람들의 말이

제보처럼 쏟아졌다.

“너희 아버지 복도에서 우시던데…”

“결혼 반대가 있었던 거야?”

“아까 밖에서 그렇게 우시던 분이 너희 아버지였구나…”

나는 놀라지 않았다.

아빠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아빠와의 기억이 많다.

아빠와 여행도 많이 다녔고,혼도 많이 났고, 기대도 많이 받았고,

그 기대를 실망으로 돌려준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아빠는 나에게 늘 응원과 기회를 주신 분이다.


부모의 책임뿐 아니라

인생의 멘토, 어른 그리고 친구의 역활까지

당연하다는 듯 해냈다.

아빠와 나는 우리는

러시아로 여행을 갔었고,

히말라야도 함께 올랐다.

나는 아빠와 있을 때가 세상에서 제일 편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빠와 가장 닮지 않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아빠는 자신감이 넘치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자기를 숨기지 않는 사람이다.

주식이 꼴아박았어도, 손실이 크게 났어도 친구들과 만나면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며 자신을 카드를 들이 밀었고,

술맛은 전혀 모르지만 사람들이 마시니까 괜히 도전해 보는 사람.

내가 술을 좋아하니까 그냥 나랑 같이 있고 싶어서 따라 마셔주는 사람.

건강한 사람이다.


집안의 가훈은 '먼저 인간이 되자' 였었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건 '의리'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아빠는 차분하거나 진중하진 않다.

욱하고, 의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그런 아빠가 참 좋았다.

그래서일까. 아빠가 너무 익숙한 탓이였을까?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을 선택했다.

닮은 점은 단 하나였다.

나를 많이 좋아해준다는 것.

나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버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는 것.

정말,

그거 하나였다.

나의 첫 친구이자 첫 사랑인

나의 아빠에게

나는 이제 결혼 6개월 만에

이혼을 결심했다고 말하러 간다.

고통스럽고,

미안해서

숨이 막힌다.


차라리 그때 말했어야 했다.

네 외도를 알게 된 바로 다음 날,

내가 동생 집으로 도망치듯 갔던 날.

아빠가 나를 보러 잠시 들렀고,

나는 너에게 사랑받고 있는척, 아무일도 아닌척을 하기 위해 나를 데리러 오라고 했다.


비 오는 날

꾸역꾸역 너를 불러냈다.

“네 남편, 얼굴이라도 보자”며

굳이 만났던 그날.

그날 너는 솔직히 말했어야 했다.

너는 가는 내내

나의 추궁과 원망에

“모르겠다”만 반복하며

자기 방어에만 바빴다.


그때

차 안에서

네 핸들을 잡아 틀어버리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같이 죽어버리고 싶었던 그때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헤어질 때

나를 꼭 안아주며 '행복해라' 말하던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아빠에게 말하러 가는 길에 동생 오른손을 잡고 서 있다.

아빠의 네 번째 눈물을 내가 만들게 될까 봐

두렵다.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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