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는 방향의 버스를 탔다.

부모님께 말할 결심...

by 권두팔

한국에 도착한 뒤, 당분간 부모님께 말하기 전까지는 인천에 사는 친한 언니 집에 머물렀다.

올해 4월, 해외에서 한국에 잠시 돌아왔을 때는 한국에서 처리하려던 일들이 있었다. 정기검진도 받아야 했고, 정신과 진료와 상담도 예약돼 있었다. 하지만 외도를 알게 된 이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 버렸다.

그래서 다시 한국에 온 김에, 미뤄두었던 것들을 이번에는 해야 했다. 서울을 자주 오가야 했다.

집 앞에서 광역버스 9210번을 타고 서울로 나가는 날들이 많아졌다. 이상하게도 늘 같은 기사님의 버스를 타게 되었다.

처음 그분을 만난 날은 내가 반대 방향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종점까지 가버렸던 날이었다. 하필 비가 오던 날이었고, 종점 정류장에서 멍하니 서 있었더니 기사님이 “안에 타서 기다리라”며 말을 걸어주셨다. 그렇게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기사님은 아내와 딸이 지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며 사진을 보여주셨다.

나는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버스가 출발하면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중간중간 기사님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건네셨다.

“어젯밤에 딸한테 전화가 왔어요. 이제 한 100킬로 정도 남겨두고 걷고 있대요. 아파트 단지도 안 걷던 애가 그 먼 길을 걷고 있어요. 포기할 줄 알았는데, 포기도 안 하더라고…”

딸 이야기였다.

나는 당연히 내 또래겠거니 생각했는데, 딸의 나이가 마흔 중반이라는 말에 조금 놀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결혼했는지 물어보았다. 기사님은 10여년 전 파혼을 했고, 그 이후로 계속 혼자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묻고 싶었다.
왜 파혼하게 되었는지.
그건 어떻게 견뎠는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하지만 묻지 못했다.

나는 곧 내려야 했고, 기사님은 검은 우산을 빌려주셨다. 비 맞지 말라고.

그날은 내가 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다다음 날에도 같은 시간, 같은 버스를 탔다. 기사님은 아내는 중도에 포기했고, 지금은 딸만 산티아고를 걷고 있다는 이야기를 업데이트처럼 전해주셨다. 다른 사진도 보여주셨다.

그러다 기사님이 물었다.
“자주 서초 쪽으로 가시는 것 같던데, 무슨 일 있으세요?”

나는 이혼 상담을 받으러 다닌다고 말했다. 아직 이혼을 결정한 건 아니고, 부모님께 말할지도 정하지 못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따님은 왜 파혼을 하셨는지.

기사님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잠시 망설이셨다.
그 사이, 나는 또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내리면서 다음번에는 꼭 우산을 돌려드리겠다고, 연락처를 물었다.

그날 저녁, 기사님에게서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딸아이는 미국 체류 중에 한 남자를 소개받았고, 만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결혼하겠다고 했다. 애리조나 주에 있는 집으로 인사를 오겠다고 했고, 실제로 와서는 한동안 함께 머물며 결혼 준비를 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기사님은 두 사람이 다투는 모습을 여러 번 보게 되었다고 했다.

어느 날, 딸아이의 웨딩드레스 사진을 찾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본인은 그 사진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며칠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말이다.

그리고 출국을 이틀 앞둔 날, 두 사람은 크게 다투었다고 했다.

근무 중이던 기사님에게 그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는 일방적으로 사과를 계속했다고 했다. 무엇에 대한 사과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사과만 했다고.

그날, 그 남자는 야반도주하듯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기사님이 마지막으로..
아직 이혼을 고민 중이라면, 부부 사이의 사랑의 불씨가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그 연이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가능하다면, 이 상황을 부모님께 먼저 알리고 도움을 받으라고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오히려 더 오래 고민하게 되었다.

나의 이혼.
끝내야 할지, 버텨야 할지.
그리고 부모님께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보다 먼저,
부모님께 말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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