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버튼
난 너와 이혼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은 내놔야 하기 때문에 널 만나 집키를 주어야만 했기에 널 봐야만 했다.
혹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어디에 맡기거나 두거나 하면 안 되냐고,
내가 바라던 바이다. 누구보다 나는 나의 성격을 잘 알기에, 건더기 하나 만들고 싶지 않고 미련하나 남기고 싶지 않기에.... 그리고 보면 흔들릴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나도 방법을 찾아보려 했다.
1. 리셉션에 맡기기 - 안 맡아줌
2. 우편함에 넣기 - 우편함 키가 있어야 열 수 있는데 우편함 키를 또 줘야 함.
3. 집 앞 어딘가에 숨겨두기 - 어디에 숨겨둠???
너도 키를 받아야 하니까 먼저 다행히도 연락이 왔다.
키 받을 겸 밥을 먹자고?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을 먹자고??
발작버튼이었다.
'새우는 걔나 좋아하지, 난 별로 안 좋아해!'
그럼 술이나 한잔하자고?
'너희 술 마시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아직까지 정신 못 차렸니?'
정말 너랑 이런 분노 섞인 메시지를 하면서 미친년처럼 길거리에서 우는 짓 그만하고 싶다..
널 보지 말았어야 했다. 근처 중식당에 갔다.
먹는 내내 눈물이 났다.
내가 그나마 좋아했던걸 고르는 널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걸 네가 아는 건지, 그냥 네가 좋아하는 건데 내가 좋아하는 건지.....
생각해 보면 넌 나에게 무취 무색 같은 사람이었다.
난 내가 좋아하는 게 명확했던 반면, 넌 내가 좋아하는 걸 그대로 좋아해 줬고 마치 네가 좋아했던 것처럼 날 따라 해줬다. 정말 꾸역꾸엮 먹었다. 밀어 넣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먹으면서 먹는 게 모두 다 살로 갔으면 했던 생각을 처음 해봤다.
이렇게 앙상해진 초라해진 모습으로 부모님을 볼 순 없었다.
토론토의 6월 날씨는 너무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식사를 하고 잠시 집까지 걸어가는데, 더 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잠깐은 웃었던 거 같다. 날씨 때문인지... 재즈 음악 때문인지... 젤라토 아이스크림 때문인지....
집 앞에 도착해서 30분은 부둥켜 울었다.
정말 많이 고민됐다. 그냥.. 이대로 한국을 가면... 끝이겠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평생 널 원망하면서, 널 볼 때마다 그리고 사과를 볼 때마다 새우를 볼 때마다 긴 머리여자를 볼 때마다 네가 뭘 할 때마다 미친년처럼 소리치고..
원래 나도 좋아했던 것들을 내 인생의 발작버튼으로 만들기엔...
내가 너무 불쌍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괜찮아질 것이다.
너희 둘은 안 괜찮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