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생애 최고의 기쁨과 환희의 순간

처음 엄마가 되었던 그 날 2016년 9월

by 조이앤쿨

나는 한 번뿐인 인생, 결혼은 꼭 해보고 싶었다. 결혼을 했다면, 아이는 꼭 갖고 싶었다.
여자로 태어났다면 '엄마가 되는 것'이야말로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신혼을 즐기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나는 그 시간을 1년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사랑의 결실이라 불리는 우리 아이가 얼른 찾아오기를 바랐다.
마침 그 해에 유독 많이 들려왔던 친구들의 임신 소식에 부러움이 커지고 마음이 점점 급해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천사는 언제쯤 찾아오려나.'​​

그렇게 급한 마음을 누르며 남편과 신혼을 웃고 즐기다가 결혼 7개월 후 2015년 12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소중한 천사가 찾아왔다.
그 순간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찼고, 아기를 품고 있던 열 달은 설렘 그 자체였다.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축하해준 가족들, 친구들 덕분에 기쁨은 배가 되었다.

치과만큼이나 가기 싫은 곳이 산부인과였는데 뱃속 아기를 보러 갈 때면 어찌나 기대되던지!
산부인과 검진일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태명은 '동글이'로 지었다. 동글동글한 성격으로 동글동글한(순탄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임신 기간 동안 육체적으로 편하지는 못했다.
출산 한 달 반 전까지 지하철로 한 시간 반 거리를 출퇴근해야 했는데, 사람이 많을 때는 호흡곤란으로 식은땀이 나기도 했고 입덧이 심한 날은 중간에 내려서 토를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신체적 변화를 느꼈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 자리양보를 많이 받아 지금도 그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크다. 우리 동글이가 복이 많은 아기구나 싶었다.
부끄럽게도 나부터도 임신 전에는 임산부의 고충에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얼마나 힘든지 몰랐기에, 임산부에게는 자리 양보했던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양보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엄마의 음식도 생각이 많이 났다. 특히 엄마의 불고기! 입덧 즈음에 친정에 들러 엄마의 불고기를 흡입한 후 얼마나 기운이 나던지! 회사가 친정과 가까워서 남편이 회식이 있는 날이면 퇴근 후 엄마와 맛있는 저녁을 종종 함께했다. 임신 기간에는(물론 지금도, 언제나 항상) 엄마의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나는지 역시 친정엄마는 최고다. 그리고 친정에서 자고 바로 출근해야 했던 날 아빠께서 준비해주셨던 상큼한 아침! 너무 예쁘고 감사해서 남겨놓지 않을 수 없었다.



친정아빠께서 챙겨주셨던 알록달록 아침


태교도 해본다고 바느질로 애벌레 인형을 만들기도 하고 출퇴근 길에는 모차르트 음악도 들었다.


오랜만에 손바느질로 만들었던 인형들


무엇보다 항상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열 달 동안 내 마음은 기복 없이 참 안정적인 편이었다. 막 달에는 출산휴가를 내고 산모교실을 찾아다닌다고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디데이를 세며 우리 아기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예정일이 가까워져 산부인과에 갔더니 선생님이 아기가 아직 엄마 뱃속이 좋은지 내려오지를 않았다고, 양수는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늘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받게 된 유도분만 날짜는 예정일 이틀 뒤였다.
집에 돌아와 유도분만을 검색해보고는 걱정이 많이 되었다. 출산 후기들도 찾아 읽어보니 슬슬 긴장이 되었다. 얼마나 아플까. 기차가 배 위를 지나가는 느낌, 수박이 나오는 느낌 등등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고통의 표현들은 더 긴장되게 했다. 남편은 왜 그걸 찾아봐서 미리 걱정을 하느냐고 하고, 나는 그래도 미리 여러 상황을 알아두면 대비할 수 있고 좋지 않겠냐 하고.
내 머릿속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경우의 출산 시뮬레이션으로 바빴다.

예정일 이틀 전은 추석이라 막냇동생이 친정에서 준비한 명절 음식들을 가져다주었다. 냉장고를 기분 좋게 꽉 채워두고, 예정일 전 날에는 남편과 집 근처 쇼핑몰을 두 시간 걸었다. 열심히 걸으면 아기가 좀 내려오지 않을까 싶어서. 자연진통이 오기를 바랐었다. 푸짐하게 저녁을 먹은 뒤, 늦게까지 티브이를 보고 새벽에 잠들었다.




그러다 예정일 새벽 6시. 자다가 무언가 '팍'하며 풍선 터지는 느낌과 함께 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이건 바로 검색으로 보기만 봤던 양수 터짐 현상이었다. 양수가 터졌을 때의 후기에서 본 대로 얼른 간단히 샤워를 하고 산부인과에 전화했더니 예상대로 짐 싸서 바로 오라고 했다. 출산 후기를 봐 둔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남편을 깨워 바로 산부인과로 향했고 가는 동안 두려움보다도 몇 시간 뒤면 어떻게든 우리 동글이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설렘으로 가득했다.​
​​
산부인과에 도착해서 내진 등 출산 3대 굴욕을 거치고, 촉진제도 맞았다. 3대 굴욕은 듣던 것보다 괜찮았고 태동검사를 하는데 활발히 움직이던 동글이가 잘 움직이지를 않았는데 이것이 가장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촉진제 덕분에 서서히 시작된 진통. 무통주사 맞을 때도 진통 때문에 주사 맞는 건 아무렇지 않았고 마취 선생님이 주사만 빨리 놔주시기를 바랐다. 그 뒤 펼쳐진 무통 천국! 아, 말로만 듣던 무통 천국이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가족분만실로 옮겨서 무통주사로 훨씬 편안해진 느낌으로 짐볼을 통통 튕겼다. 선생님께서 보시고는 오후 3시쯤 아기가 나올 것 같다며 자리를 비우셨고 남편과 둘이서만 분만실에 있었다. 친구가 중요하다고 했던 분만 호흡법을 남편과 배워갔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기가 막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남편에게 다급하게 간호사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다가 예상하던 3시가 지나고 선생님이 오셨다.

그때 마침 분만실에서는 크리스천도 아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인 '야곱의 축복'이 흘러나왔다. 동글이가 태어나는 이 시간은 그야말로 '축복의 시간'이구나! 진통의 간격에 맞춰 내가 힘줄 때 간호사와 남편이 내 배를 세게 누르며 아기가 나올 수 있게 밀어주었다. 그러다 막판에는 산모 스스로의 힘으로만 해야 한대서 이를 악물고 세네 번 정도 힘을 준 결과 3시 반이 넘어 '뿅'하고 우리 동글이가 이 세상에 나왔다. 시원하게 쑤욱 나오는 느낌. 기쁨과 환희 그 자체였다. 감동의 눈물이 흐르지 않을까 했는데 눈물보다는 벅찬 감동으로 온몸이 하늘로 둥둥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이 감동을 남편과 함께 할 때 진짜 우리가 부부임을 새삼 느꼈다. 남편이 탯줄을 잘라줬고, 남편은 쑥 나오는 동글이를 딱 처음 마주했을 때 그 감동으로 눈물이 조금 나왔다고 한다. 동글이의 체온을 느끼며 그렇게 너무너무 보고 싶었던 내 아이를 품에 안았다.

후처치를 하는 동안에도 다행히 무통의 효과로 괜찮았는데 다만 선생님이 후처치 중 간호사에게 거즈 좀 한 장씩 말고 여러 장씩 달라는 얘기에 조금 무서웠다. 보이진 않지만 피가 계속 나고 있나 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마무리되고 휠체어에 태워진 나는 따뜻한 담요와 수면양말로 보온을 유지한 상태로 입원실로 옮겨졌다. 그 뒤 아기와의 생활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엄마 1일 차'가 되었다.


(결혼 준비할 때 'OO신부님'이라 불리는 게 어색하고 오그라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기를 낳고 나니 이제는 생전 처음 불리게 되는 'OO엄마'가 되었다. 'OO엄마'라는 호칭은 역시나 어색했으나 아기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