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과는 5살, 11살 차이로 터울이 많이 나는 편인데,첫째 동생과는 어릴 때 싸우면서도 많이 웃었던 기억이,둘째 동생은 마냥 귀여워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막내 동생 임신 소식은 전화로 말씀하시는 걸 엿듣고 당시 11살이었던 나는 깜짝 놀랐었다.
엄마께서 아빠와 막내 동생을 낳으러 가셨던 날은 지금도 생생하다. 부모님은 병원으로 가시고 나는 엄마를 돕기 위해 나름 집 청소를 해놓겠다고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다 베란다에 들어와 있던 벌에 쏘였고, 처음 벌에 쏘여본 나는 놀래서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된장을 바르면 된다는 친구의 말에 급하게 된장을 찾다가 못 찾고 연고를 발랐었다.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 나던 추억이다.
중학생 때는 하굣길에 막냇동생을 유치원에서 하원 시켜야 할 때가 있었는데 우리가 신기해 보였는지 어떤 관계인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가끔 있기도 했다.
막내의 학교 숙제를 위해 부모님 대신 내가 대공원에 데리고 가기도 했었고, 막내를 보디가드라 칭하며 둘이 함께 다녔던 즐거운 추억들을 친정에 있는 사진첩에서 발견하면 웃음이 나곤 한다.
명절 연휴 때는 할머니 댁에서 셋이 노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나누기 힘든 이야기들도 동생들과 나누면 속이 시원할 때도 종종 있었다.
나는 삼 남매로 자란 것에 만족도가 무척 높다. 셋이 함께 집에 있으면 다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남매지만 둘보다는 셋이라 더 잘 뭉쳐지는 느낌이다. 첫째 동생은 첫째 나름대로, 둘째 동생은 둘째 나름대로 참으로 든든하다. 고맙게도 막내는 무뚝뚝한 첫째인 나를 대신해 엄마께 애교도 많이 부린다.
그래서 나는 '셋'이 참 좋았다.
신혼 초까지 누군가 자녀계획을 물어볼 때면 '셋'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첫째 동글이를 낳고 보니 현실적인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되면서 둘도 큰 마음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무래도 출산 후 회사를 그만두어 외벌이가 된 게 가장 큰 이유이지 않았을까. 또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둘을 어디 맡기기에는 참 막막하다.
그래도 나는, 힘들어도 우리 아이가 '혼자'는 외로울 것 같아 꼭 '적어도 둘'은 되면 좋겠다 싶었다. 남편은 좀 더 고민해 보자 했고 시간이 갈수록 나의 마음은 타들어갔다.계속 고민만 하다가 정작 갖고 싶을 때 내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조마조마해졌다. 나는 이때 '내가 너무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인가? 경제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단순히 내 욕심인 건가?' 고민도 많았다. 남들 보면 어떻게든 하는 것 같던데, 우리도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나중에 내가 알바라도 하면서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가족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또, '셋'을 바랐던 내가 '둘'이라도 꼭 낳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경험한 바로는 형제자매는 부모나 친구와는 또 다른 든든한 내편이기 때문이다. 첫째 동글이에게도 소중한 동생을 선물처럼 주고 싶었다.
틈틈이 남편을 설득하면서 (보통 다른 집들은 남편은 갖고 싶어 하고 와이프는 현실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기에 반대하는 것 같은데 우리 집은 반대였다.) 2019년이 시작될 때 올해의 목표 1순위를 '네 식구가 되는 것'으로 기록해 놓았었다. 간절한 바람이 통했던 걸까. (직접 기록해놓는 것의 중요성과 힘을 깨닫게 되었다.) 5월에 심상치 않은 몸의 상태를 느끼며 (혹시나 상상임신은 아닐까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테스트기를 해보니 "오와!! 두 줄!!!"
너무나 반가웠던 두 줄!!!
난 무척 기뻤지만 첫째 때와는 다르게 남편에게 바로 말하지 못했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었다. 남편이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묘하게 아팠다.
그렇게 난 꿈에 그리던 둘째 보물이 뱃속에 있음을 알게 되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너무나 벅차올랐다. 그 기쁨이 큼과 동시에 첫째를 위해 둘째를 갖고 싶었던 건데 아이러니하게도 첫째가 짠해지기도 했다. 이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할 날이 열 달도 안 남았다 생각하니 첫째가 짠해진 것 같다.
사실 첫째는 처음에는 '동생'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지만, 산부인과에도 같이 다니고 동생의 존재를 계속 잘 이야기해주니 (동생을 맞이하게 될 첫째들을 위한 그림책도 몇 권 읽어주었다.) 첫째도 동생에게 사랑을 표현했다. 내 배에 가까이 다가와 "아가야 사랑해"라고말해줬던 예쁜 첫째. 배가 한참 불러올 때는 같이 놀고 싶은지 동생은 언제 나오는 거냐고 묻기도 한다.
예쁜 마음으로 동생을 기다리는 첫째에게 무척 고마웠다.
그리고 신경을 거의 못 써주는 둘째이지만 검진받으러 가서 확인해보면 무럭무럭 자라주고 있는 둘째 "순동이(순하고 동글동글하기를)"에게도 참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