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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품은 달콤한 딸기

그 딸기가 먹고 싶다

by 조이앤쿨


어여쁜 빛깔을 뽐내던 단풍이 어느새 지고 코 끝 시린 바람이 분다. 이쯤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바로 하얀 스티로폼 상자에 반짝반짝 예쁘게 줄 서 있는 빨간 딸기. 그 모습을 가만히 보기만 해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가 상상된다. 딸기의 달콤함이 온 입 안 가득 감싸 안는 그런 느낌. 올해도 역시 동네 마트에서 반가운 딸기를 만났다. 그리고 마주한 순간 더 반가웠던 그 이름. 바로 지리산 산청딸기.


딸기 중에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내 입맛엔 산청딸기가 제일 맛있다. 그 이유는 바로 나의 할머니 댁이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산청.
어릴 때 설 연휴에 할머니 댁에 가면 딸기는 정말 원 없이 먹었다. 일 년 동안 먹을 딸기를 할머니 댁에서 다 먹었던 것 같다. 거실 바닥 한 켠에는 차례상을 위한 식재료들로 가득했는데 특히 빨간 대야에 담겨있던 딸기들이 정말 반가웠다. 주변에 비닐하우스에서 딸기 농사를 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이 오며 가며 명절 인사를 하시며 딸기를 나눠 주셨던 것이다. 시골의 정을 느끼게 하는 달콤함이었다. 그 달콤함 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그 딸기를 우리 삼 남매 먹으라고 대야 채로 한가득 씻어서 챙겨 주셨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 한 컷의 사진으로 남아있는데 흑백사진이지만 혼자만 새빨간 색을 띠고 있는 딸기가 자꾸 생각났었다.


며칠 전 두 딸아이를 위해 딸기를 씻었다. 만 원어치 사도 손바닥 만한 플라스틱 통에 2단으로 들어있는 게 전부인 비싼 딸기. 겨울이라 물이 더 차가워 씻는 동안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잠깐이지만 손이 어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깨끗하게 씻은 딸기가 아이들 입에 쏙쏙 들어갈 생각을 하니 손이 시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들 입에 넣어주느라 비록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은 없어도 기쁜 마음이 컸다. 그 순간 갑자기 할머니 댁에서 딸기 먹을 때의 그 흑백사진이 다시 떠올랐다. 빨간 딸기뿐만 아니라 딸기처럼 새빨개진 아버지의 손이 보인다. 시골은 물이 더 차가웠을 텐데 대야에 꽉 찬 그 딸기를 모두 씻어주셨었다. 지금은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의 손이 이제야 보이는 것이다. 딸기에 홀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께 먼저 드시라고 하지도 않고 허겁지겁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그렇게 매번 우리 삼 남매의 입에 딸기가 들어가는 것을 보시는 기쁨이 크셨던 것이다. 우리는 그냥 딸기가 아닌 사랑 가득 담긴 딸기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 댁에서의 넉넉한 인심과,

그에 더해진 딸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아버지의 사랑.


마트에서 지리산 산청딸기를 만날 때면, 설 연휴가 다가올 때면 항상 생각이 난다. 할머니 댁 작은방의 따뜻한 온돌 바닥에 동생들 이랑 오손도손 모여 앉아 맛있게 먹던 그 사랑. 마음 한편이 따스해진다. 그리고 그 딸기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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