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 리스트는 아니지만 비우는 것을 참으로 어려워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고 키우다 보니 늘어나는 물건들과 그 물건을 정리해야만 하는 책임감과 물건이 많을수록 강해지는 업무 강도로 어느새 비움의 재미에 흠뻑 빠져버렸다.
한 참 비우기에 관심이 생겼을 때는 미니멀 라이프 카페를 기웃기웃하기도 했고 정리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었었다.
그때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건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을 마음에 품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비우기를 하기 위해 용기를 내고 있다. 때로는 추억이 가득 담겨 있어 나의 보물상자에 두는 것처럼 꼭꼭 가지고 있고 싶은 물건들도 많지만 이제는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겨두고 떠나보내려 한다. 공간은 제한적이고 나의 추억은 지금부터 또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기에. 그래서 비워지고 사진으로 남긴 그 추억들을 한번 기록해보고자 한다.
왜 버리지를 못하는지, 펴보지 않을 전공책들인데.
책꽂이에 꽂혀있는 전공책들을 보면 '그래, 내가 내 전공을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는데'하며 잠시 그 시절 추억과 젊음에 빠졌던 것 같다. 파릇파릇하고 꿈 많던 대학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잠시 꿈속에 있는 듯한 느낌. 꿈속의 캠퍼스는 어찌나 햇살 가득하고 초록빛인지 그야말로 희망 이 가득하다. 그 느낌이 좋아서, 그 느낌을 잊고 싶지 않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새롭게 공부해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한데.
미디어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내가 공부하던 때만 해도 지상파 방송 3사만 알아줬는데 지금은 뭐 채널은 넘쳐나고 개인방송이 더 뜨고 있는 시대니) 옛 유물이 되어버린 책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종이류에 과감히 넣어줬다.
작년 아이 방학 때 친정에서 보냈는데 친정에서 아직도 비우지 못하고 있던 내 책상 서랍을 과감히 비웠다.
특히 이 휴대폰들. 저 삐삐는 사용도 못했었는데, 삐삐부터 캐나다에서 썼던 폰도 있고. 다 비워버리니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각각의 휴대폰을 썼을 때 연락 자주 했었을 사람들이 떠올라 그 느낌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비우고 난 뒤 개운한 느낌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미련하게 남아있던 인간관계도 정리된 느낌이랄까.
가장 최근에 비운 범퍼침대. 이 범퍼침대를 비울 때 왜 그렇게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는지 마치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부피가 크고 이제는 사용하지 않아 비워야만 하는 범퍼침대.
첫째와 약 5년을 함께했고 둘째와 1년 정도를 함께 했는데
이 작고 작은 범퍼침대 안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수유를 하고 놀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며 웃고 울었던 다양한 감정들과 느낌들이 담겨있기에 비운 다기보다는 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담긴 우리의 소중하고 다시는 겪을 수 없을 그 시간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쫘악 지나가 그 추억을 곱씹기 바빠졌다. 그래도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시간이다.
비울 때 뭉클한 감정들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막상 비우고 나면 너무나 후련하다.
마음 한구석에 비울까 말까 했던 그 고민의 자리 또한 비워내니 마음의 여유도 생긴 느낌이다.
그 마음의 여유에 새로운 추억을 담을 여유도 생긴다. 물건을 비웠을 뿐인데 내 몸무게도 줄어든 것처럼 발걸음도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