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_내가 나로 살아야 하는 이유#21
브런치를 통해 <그때와 지금 그 사이>, 모든 주위 환경들 속에서 느껴왔던 (365일간의) 기록/생각들을,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전합니다.
#21
<비극의 마음을 견디는 법>
몹시 괴롭고 슬픈 일들이 일어날 때면, 나는 의식하지 않은 채로 한탄 섞인 목소리를 내버리고는 한다.
개인의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세상에 있었고, 있을 두려운 이야기들을 마주 하는 것이 내게는 어떤 비극 같은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창가의 앉아서도 쉽게 나는 세상에 어느 곳에 있었을 일을 뉴스로 듣는다. 세상이 흘러나온 모든 것들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삶이 있다.
늑대에게 늑대로써 키워진 여성, SNS 매체와 방송 만으로 세상을 접했던 어느 가족들의 이야기, 여행을 나갔다가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창가에 앉은 시간 동안 흘러나온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들의 일들까지도, 안타깝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 우리에게 나쁜 일이 되는 걸까?
아니면, 그들이 처했던 환경과는 나의 환경은 당시 달랐으므로, 또 다른 사람이므로 좋았어야만 하는 일이 되는 걸까?
경험하기 쉬워진 매우 간접적인 것들이 너무도 쉽게 나를 생각하게끔 한다는 사실은 그러나 부정할 수 없음이다.
우리가 느끼는 단 하나의 비극도, 누군가에게는 비극이 아닐 수 있으며, 우리의 일상이 그들 중 누군가에게는 아주 비극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당연스러운 사실을, 몰라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것들’을 잘 나누어 알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다만, 무한하게 생각해 나가는 동물로서의
매일에 내 고민일 뿐인 것이다.
오늘은 5분 거리 동네마트에서, 여름이 아주 덥고 괴로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어제는 도쿄역인근 어느 역에서 사람이 출근 시간에 철로 위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는 오늘 가족들의 곁에서 죽었으며, 또 이름도 알지 못할 그 누군가는 오늘도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오늘 또한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듯이.
삶의 봉우리에서 올라왔다 내려가는 새싹들의 속도가 어떨지를 가늠하는 일이 점점 더 내게 어려워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 하루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하루가 그들의 비극들을 슬픔으로 받아들였고. 내가 ‘지나칠 ‘날들 중 ‘지나갈’ 날로 보내며, 생각했다.
모든 비참함이 필요했을 마음으로 머금어졌다가,
살아갈 만큼의 괴로움들을 잘 남기고, 서서히 잘 빠져나갈 수 있기를, 여느 그대들에게 또한.
필요했을 ‘비극의 마음’들을, 과거에도, 오늘에도, 내일에도 잘 머금었다가, 다시 살아가는 힘으로 내 보일 수 있기를. 많은 비극을 남기지 않고 흘려보내며, 살 수 있을 만큼에 ’ 그것들‘ 만을 잘 남기기 위하여.
오늘 잠자리에 눕기 전,
내 숨결의 기대어 간절하게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