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_내가 나로 살아야 하는 이유#20
브런치를 통해 <그때와 지금 그 사이>, 모든 주위 환경들 속에서 느껴왔던 (365일간의) 기록/생각들을,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전합니다.
#20
<양 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흘러가는 삶을 살아가는 중에도 우리는 아주 많은 인간 군상들을 목도하고는 한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고. 그 차이란 어느 한 생각을 가진 본인만의 ‘고유한것’ 이지만, 실제 인간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력을 주고, 서로의 감정에 시초를 일깨우게 하며, 때로는 정신적인 압박을 받게끔 하거나, 주기도 한다.
“모두가 공동체로서 ‘현재사회’의 이점들을 나누고, 공유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삶의 충족과 더불어 우리 개개인의 삶의 질이 아주 높게 올라가 있는 상태이다. 이는 안정적인 자원을 나누고자 하는 구성원들 개개인이 ‘그것’을 이미 누리고 있노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 과도 같다.
세상에 있는 그 무엇이든 그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의 가치는 떨어진다.
그대들이라면 누구나라도,그것을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우리가 ‘가치 있을 수 있음’을 앎으로써.
스스로를 불행해 떨어뜨리기 쉬워진 상태라고 가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울타리는 현재, 아주 부러지기 쉬운 상태이다. 이미, 울타리 안쪽에 양 떼들이 초원 바깥쪽보다 더 많다.
울타리란 ‘것’의 이점은, 늘 명확하다.
그것은 어느 정도 우리를 보호하며,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우리를 더 쉽게 먹고 자고 살게끔 한다.
나는 이것이 아주 귀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안다.
우리가 우리 몸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는가?
역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념적이거나, 종교적인 이야기도 더더욱 아니다. 그저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음‘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를 안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이제는 ‘이것’ 자체로 인한 허점 또한 잘 생각해 봐야 한다는, 그리고 또 생각해 볼 수 있을 만큼 오만해졌노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모든 생명이 죽음으로 다가간다면 우리 또한 모든 생명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보호의 울타리 안쪽에 있는 것도 죽음이고, 그 바깥쪽에 있는 것도 죽음이라면, 우리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으로 가는 것인가?
다가와야만 하는 ‘그것’에 대한 삶의 태도인 것인가?
우리가 어떤 본성을 가진 개인이었든 간에, 인간이라는 울타리로 보호받는 이상, 나도 그대들도 모두 어떠한 집성체적인 것들의 불구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울타리 안쪽에 이점을 잘 알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지닌 허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또한, 알 수 있어야만 한다.
그 안에 개인이 다시 작은 울타리를 만든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한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나를 생각하라. 그대 자신들을 생각하라.
‘울타리의 의미’를 제대로 알라.
‘그것’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삶을 사랑하는 그대들은,
그대들 모두와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을 위해서.
‘쉽지 않게’ 친절하고, 더 좋은 삶을 공유하며, 생각을 나누라, 어리석게만 생각되는 ‘헛된 일들’이 정말 우리에게 ‘헛된 일 일지‘를.
‘제대로 잘 살아간다’는 일이 그대들 모두에게 정말‘어떤 의미’를 가질지를 치열하게 궁리하며 살아라.
“‘병에 걸린 양들과, ‘그렇게’ 될 양들과, 걸리지 않은 양들’ 그 ‘모두’가 결국 우리와 같은 세상의 울타리를 공유하는 ‘양 떼들’이다. “
그러므로,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나를 사랑하며, 그대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개개인이 가진 ‘마음’이 울타리 안에서 서로의 삶을 지켜내는 ‘무언가 ‘가 된다는 믿음으로.
당신의 생각이 비단 당신의 삶뿐만 아니라.
삶을 나누는 이들과 살아가는 좋은 풀밭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