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_내가 나로 살아야 하는 이유#25
브런치를 통해 <그때와 지금 그 사이>, 모든 주위 환경들 속에서 느껴왔던 (365일간의) 기록/생각들을,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전합니다.
#25
<좌절이라는 힘으로 말미암아>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는 불리한 상황 속에 놓여 있을 때, 자신의 처지 속에 좌절하고 당신에 대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탓한다.
잠시동안의 지끈거림. 숨이 잠시 멈췄다가 쉬어지는 그 순간에 있었을, 짧은 상념 속에도 인지하지 못할
작은 걱정의 마음이 머물러 있었다.
아주 괴로운 순간에 늘 눈앞에 나의 문제 다른 모든 것들의 마음 쓰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런 상황 안쪽에 있는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가끔은 흐린 눈으로 배경 뒤에 밀어 넣어두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제는 하나의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하는 과정을 은연중에 한번 해버리고 나면, ‘그것이’ 그리 좋은 해결책이 아님에도, 아주 조금은 그 마음이 누그러졌노라고 착각하고는 했다.
제3자로써_내 삶. 즉, 나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극의 1막이 있으면, 곧 2막도 있는 법이다.
2막이 다가오면, 나는 예전 보다 더 나 자신을 여유 있게 바라보며 나와 함께 하는 배역들을 마주 하며, 서로를 용서하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보듬으며 나아갈 수 있을까?
한번 시작되는 자기비판적 사고는 그러나 쉽게 끊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몇 년 전 처음으로 나의 유서를 작성하였을 때, 나는 슬픈 감정과 후회, 자책만으로도 울면서 하루를 낭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게 체감했다.
우리의 지나친 삶이 남겨주고 떠난.
앞으로‘지나가야 하는 모든 삶들’이 있다는 사실을 앎에도. 내게는 어쩐지 ‘홀로’ 용서하지 못할, 또 용서받지 못할 것만 같은 자책적인 마음이 늘 충만해 있었다.
후회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리고 용서하지 못한 마음이 늘, 다시금_
지나간 시간이 되어 더 나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그것이 내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일이면서도, 어느 한편으로는 그렇게 느끼지 아니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이중적인 마음이 내 삶 자체를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것만 같은 묘한 착각을 느꼈다.
착각 속에 살던, 당시에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그렇게 다른가 지금의 나는 무엇을 감사하며 그때 나는 무엇을 감사하지 못했는가.
그러나 사실 바뀐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귀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 것은, 가지고 있는 시간을 사용하여.
그간 내내 마음속에 있었을 밧줄들을 분류하여 보는 눈을 기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습관들을 길렀을 뿐이다.
그것들이 곧.
“내 삶에서 없앨 수 없을 귀한 것임을 알기 위해 애쓰고.” 다시 또 만들어질 ”‘다른 것들을’ 위한 자리를 조금 정리해 두었을 뿐인 것이다. “
나와 그대들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 많은 위인들과 철학, 문학, 과학자들 음악가, 거리의 광대들까지도 ‘이런 일을’ 했다.
그들도 자책을 했고, 나 또한 자책을 했다.
우리가 삶으로써 받을 수 있는 힘 중에 자책하는 힘 또한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자책이라는 힘이 어쩌면, 우리의 행복과도 같게 우리를 살리는 존재일 수도 있겠노라는 생각을 가졌다.
이에 말미암아, ‘책망하는 힘’이, 곧 살아가게 하는 이유 같은 것이 되어야만 한다.
삶의 의무와 책임을 나누어둘 수 있다면,
나는 이제 걸어 나아가며, 삶의 대해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모든 귀한 삶에 대한 오롯한 힘이 라고 느끼고 싶다.
공명하는 마음, 감정과 자책감, 감사와 숨을 쉼 또한.
내게 ‘주어진’ 것이라고 매일 느끼고 싶다.
주어진 것들의 매일 더 감사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그저 살아간다는 특별하지 않은 이유가. 그것들이 내 삶에 있기에 비로소 특별해질 수 있음이 내 좋은 마음을 만들어 내는, 모든 이유가 될 수 있기를.
이제는, 내가 걷는다는 행위를 너무도 쉽게 알듯이,
모든 절망적이었던 마음들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내 삶’이 지나간 후에 날들 또한 나는_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알기위해 애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