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_내가 나로 살아야 하는 이유#24
브런치를 통해 <그때와 지금 그 사이>, 모든 주위 환경들 속에서 느껴왔던 (365일간의) 기록/생각들을,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전합니다.
#24
<피할 수 없는 너른 바다와>
나는 오늘 보통의 적당한 식당에서, 적당히 맛 좋은 음식들을 귀하게 먹고, 모든 용무들을 본 후에 한 커피숍에 들어가 차 한잔을 주문했다.
열띤 빗물들을 느끼며 물속에 있는 기분도 느꼈다.
아주 따뜻한 ‘그것들이’ 하루의 나를 아주 천천히 해동시키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그저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젖은 거리를 걸으면서도 저마다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어느 날은 내가 망망대해에 손수건만 달랑 들고 물기를 닦아 내야만 하는 것 같은 막막한 날이 있는가 하면,
입을 닦고 남은 접은 휴지조각으로도 오늘의 감정들을 모두 잘 갈무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날들도 있다.
다만. 오늘은 좁은 우산 모서리에서 떨어지는 빗물들이, 나의 삶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너른 바다처럼 느껴지는 날이었다.
모든 ‘세상의 바다’가 동서남북 상하좌우로 계속해서 움직인다고는 하는데, ‘요동치는 감정이란 그런 것들이 아닌가.’
‘그것은’ 어딜 보아도 온통 너무나도 많아.
아주 가끔은 내가 내륙의 끄트머리나, 섬에 한가운데가 아닌 해저 안쪽에서 기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상마저도 들게 한다.
나는 과거 나를 괴롭혔던 아주 보통의 슬픔들이 나를 다시 ‘그 한가운데’로 영원히 회귀하게 하려는 것은 아닐지에 대해서도 많이 의심하고는 한다.
왜냐면, 자연의 모든 이질적인 것들이나, 하다못해 잠시간 교정해 둔 우리의 뼈의 위치까지도,
과거의 존재한 ‘성질을’ 따라가기 위하여 부단히 꿈틀거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매일의 감사와 기쁨이 더는 내 삶 속에 있지 않는다면, 곧 나는 내 좌절로 인하여 그보다 더 큰 상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졌던 슬픔들이 우리를 늘 수면 아래로 잠식시키려 하는데, ‘이것이’ 매일 내게 더 두려운 것은_적어도 나는 세상의 모든 기쁨 없이는 살 수 없고 슬픔만으로는 더더욱 숨 쉴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위와 같은 사실이 곧 ‘우리가 어떠한 일부‘감정 속’으로 <영원회귀>하려 하는 것을 몹시도 두려워하는 이유와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 인간이, 발굽을 펼쳐 절벽을 거슬러 올라가는 산양 때들과 같이, 늘 높은 곳에 남아 있어야만 할. 맛 좋은 풀들을 찾으려 애써야만 한다고 느낀다.
그것이 곧 그대들과 나에게도
슬픔을 다스리고 살아가는 방법이란 그와 같은 것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있을 모든 초원들과, 절벽 사이를
어느 방향으로든 애써 나아가는 그대들은, 그러니 살아가라.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떨어진 게 아니며, 걷는다 하더라도, 그저 걷는 것이 아니니.
‘그렇게 살아가는 산양들’과 같이_
당신들께서 오늘도 살아 있노라면.
“그 모든 시도들을 부디 드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사랑하여 보듬어주어라.”
삶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살아가려 애쓰는 오늘.
불안해 빠질 때면 나는 몹시 좋아하는 구절들 중 하나를 골라, 내 바보 같은 발음으로, 아주 천천히 읊고, 쓴다. 허밍웨이의 글귀가 그대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
각자가 지닌 그릇에 크기가 그 어떻든 간에,
아름다울 슬픔은 ‘내가 살아있는 한’
결코. 나를 다 적셔두지는 못 할 것이다.
슬픔이 빗방울이 라면,
우리의 다른 모든 감정들도 그렇다는 것을 안다.
너른 바다는 그 표면을 아름답게 빛내면서도, 끝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죽음과 따라오는 감정들이 결국, 우리를 삼킬 바다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늘 삶 보다 더 큰 것이 될 터이니,
삶보다 길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그러니. 나는 그저, 찰나의 지상을 더없이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