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_내가 나로 살아야 하는 이유#41
브런치를 통해 <그때와 지금 그 사이>, 모든 주위 환경들 속에서 느껴왔던 (365일간의) 기록/생각들을,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전합니다.
#41
< 모든 삶의 때를 위한 >
미리 알아챈다는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사전적인 의미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나는 가끔,
진실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실감조차 나지 않는 상황들 속에서
무얼, 선명하게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육감적인 부분이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잠깐의 선택 속에서도 매일 십분 고민한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더라도,
그것은 내게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내 쓰라린 멍청함은 가끔,
지나간 나의 과거를 투시하게끔 한다.
물론 정말 그렇게 하지는 못 하겠지만.
내 작은 고난과 집착과 후회들이
지금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허상이고, 현실이 아니지만
세상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회상 속에서
삶을 돌이키듯 나도 때로는 그렇게 한다.
무엇이든 나는 벌어지고 나서야만 비로소 제대로 깨닫는다. 삶 속에서 우리는 매일 잃어간다.
마음과 육체와 허상뿐인 시간과
우리의 인간관계들까지도 그렇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영원히 잃어 가는 존재인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이야기는, 너무도 회의주의적이고
또 의욕 적이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점에 대하여 오늘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사실은 아주 매일 이런 생각들을 한다.
우리가 잃어가는 존재라면,
우리가 잃어가야만 하는 생명이라면,
언제나 당연스럽게 가지고 있다고 여긴 것들을 우리가 결국, 놓아 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사소한 존재들이라면.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것들에 대한
그 모든 것들을 ‘더 우리의 것이라고
느껴도 괜찮지 않을까?‘
먹고 싶은 날에 무언가를 먹고,
울적한 날에 구슬퍼하고,
사소한 모든 실수들을 애틋한 것으로
남겨도 괜찮지 않을까?
미래를 대비한다는 일은
내게 아직, 아주 먼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것’을 알아챈다는 것도, 잘 모르겠다.
매일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잘 사고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오늘.
나는 다시 오늘,
스스로 나의 삶을 의지하며,
‘길을’ 따라 나아간다.
알 수 없는 길과, 삶 가운데서
‘모든 것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가 안다.
또, 우리의 미래를 여전히 우리는 모른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렇지만,
나는 오늘을 산다.
삶을 내모는 것만 같았던, 지난밤들의
쓰라린 멍청함이,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그리고 또, 우리를 더 나을 삶 속에 있게 한다.
그래서, 나는 가까웠던,
그날에 과거 보다 더.
일과를 잘 마친,
오늘 하루에 오롯한 감정들을.
내 책상 위에 두고 천천히 읽어나가려 부단히 애쓰며,
잘 느껴보기 위해 노력한다.
모두가 다 잃어버릴 삶들을 산다.
그렇기에, 지나간 날들과 지나칠 날들이
나 ‘하나의 존재를 위하여’ 여기에 있다.
나는, 이런 것들에게
그래서 매일을 감사한다.
대처할 수 있었던 과거는 없었고,
대처할 수 있는 미래 또한 내게는 여전히 없다.
나는 여전하게, 헤멜자리를 뒤척인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세상을 사랑하며 또한
나를 사랑하기 위하여, 내 삶을 돕는다.
감사하며, 웃으며, 애정하며,
감내하는 마음들조차도
이제는 절실하게 느낀다.
‘이런 일들’을 무엇이라고 부를지
그래서 때로는,
알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아닐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런 삶의 마음을
‘모든 것들을 위한 예방책’이라고 부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