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살아가는 이유

Chapter 1 _내가 나로 살아야 하는 이유#38

by 쌍둥이

브런치를 통해 <그때와 지금 그 사이>, 모든 주위 환경들 속에서 느껴왔던 (365일간의) 기록/생각들을,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전합니다.


#38

<좋게 살아가는 이유>





오늘,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관에서 나온 후에,

지금까지 우리가 봐 왔던

영화의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다가,

각각의 아르바이트처로 헤어졌다.


수만 가지 영화들을

생각해 보다가 그중,


재난에 상황

비극의 상황,

경쟁의 상황 그 속에 사람이 살기 위해서 비정해지고,

보다 효율적으로 서로를 대하며,

벼랑 끝에서 밀쳐내는 일들의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물론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모든 끝에서는 좋은 방향으로,

그리고 조금은 희망적인 방향으로 결말을 맺지만.



현대 속에서,

우리의 판단이 늘 영화와 같은

그런 결말을 맺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운이 좋게도

정말 평범하게 흘러간다.


그러니까 내 말은.


영화 속에 재난들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삶이 당장 벼랑과 벼랑 사이에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다만, 극한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쉽게 마음을 좀 먹고,

필사(必死)의 상황이 아님에도

서로를 몰아세워 구석진 곳으로, 밀어 넣으려고 한다.


아포칼립스적인 재난상황이 아니더라도,

현실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알게 모르게,

그렇게 한다.



나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이런 우리 모두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리라라는 것을 평범하게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진심으로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비단,

내 생각이나 마음을 알지 못하고도

매일을

죽어가고 있는데



나와 함께 내 몸으로

당시 내 상황을 모두 겪지 않은 타인이 어떻게,


당신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그저,

이와 같이 살아간다.



그저, 서로를 침해하지 않는 선을 잘 지키기 위하여,

언제나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타인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귀한 사람들인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들 중 하나가 된다.



그들은, 알지 못할 것들을 진심으로 알기 위해 애쓰고, 매일 부던하게 이해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좋은 생각과 여러 가지 관찰들,

또 관심으로.



그들은 타인에게서가 아닌_

오로지,

자신에게서 그런 마음을 이끌어낸다.



실제로,

그것을 나누어 받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들로 하여금 그 친절을 자신의 몫으로 받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마음을.



“보라. _

세상에는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


이유 없이 친절하게 대해주는 감사한 사람들.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옳고 그름을 결코

시시비비로 따지지 않는 사람들.


사소한 배려를 알고,

감사하며,

그것들을 결코 위선으로 여기지않는 여러 사람들.



나는 이런 모든 사람들을

‘함께 살아갈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이유 없는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그리고

함께 살아 가려 노력한다는 것은 내게,

이토록 놀라운 의미이다.



“반대로, 이런 유형의 사람들도 있다. “


수많은 친절함 끊임없이 의심하고,

해를 입히려고,

어떠한 각오를 가지고 꾸역꾸역

타인을 깎아내리고 배척하려 애쓰는 이들.



그들은 이유 없이 친절하면,

반드시 의심하고.


친절하게 대해주고 떠나가는 사람들의 등뒤로

손가락질을 하며,



“거봐!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왜 나한테 잘 대해주나 했어!”


하고, 여전히 구시렁거린다.



오늘날,

여러 사람들이

결국은 자신과 닮은 환경과 요건,


인연들 속에서 모여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될 거라는 말들을 여러 차례 들으며,


결국,

삶은 홀로만 살아가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말들을 접하며.



“서로 어울리는 사람들

다 거기서 거기야!“


와 같은,


모든 비슷한 말들이

어느 세대를 불문하고,

종종 비슷하게 등장하는 이유가



나는

‘세상을’ 좋게

살아가는 이들의

선의를 의심으로 여기고,

밀쳐내어 결국에는



그로 인해 지쳐버린 이런 사람들이,

종래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귀찮다’고 생각해 버리는

감정 속에서 태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살수록, 더 나는 그런 걸 느낀다.”



선의를 알고자 노력하는 생각하는

사람이 선하게 살아가려는 이들 곁에 있고자 하고.



감사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감사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더라도,

괜찮은 상황들 속에서,

서로를 향해 평범하게 사랑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고, 인사를 나누고 싶은.


그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이 이 같은

좋은 마음으로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안다.



세상은 어느 누구에게나 여전히 두렵고,

어떤 상황에서

우리는 정말 불현듯,

절망 속에 빠져든다.



슬픔도,

이유없는 외로움과 아픔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이게 세상을 늘 의심하고

조심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환란의 세대는,

어느 때나 있을 수 있다.


사람도 그렇고,

이 모든 환경 또한 그렇다.



그저, 그 모든 상황들 속에서

자신만의 틀 안에 제멋대로 세상을 가두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단으로 점철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들 속에서

삶을 잘 살아 내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알고 배우기 위하여,


누구나가

애쓸 수있기를 바랄뿐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살아가는 날들이,

그렇지 못할 날들보다는

더 내 마음을 편하게 한다.


나는 모두가

이런 마음을 느낄수있기를 바란다.


세상을 살아가려 애쓰는 모든 마음들에게서

이유를 찾지 말라,

이유 없을 일이며



무엇보다



“그것은 유치한 짓이다.”



그저 잘 느끼고,

감사하며 나아가려 노력하라.



세상은 영화 속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 가지만,

여전하게 세상 속을 살아가고,

삶을 영위한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나는 적어도 가엾은 슬픔이나,

분노의 마음들보다는,

좋은 마음들.



그 가운데서

매일을 감사하며

나는 살아가고 싶다.



좋은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떠한 까닭 없이도 피어나서,

그저 나를 위한 그런 삶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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