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달 동안 아이를 품고 또 석 달을 키웠다.
임신해서 내 마음과 상태를 기록하지 않았다면 힘들었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아기가 정말 예쁘다. 뱃속에 품고 있을 때도 꿈틀거릴 때마다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을 만큼 귀여웠지만 태어나서 하루하루 뽀얗게 변하고 파닥거리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그 행복이 어디라도 소리치고 싶을 만큼 크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진통의 고통은 없었지만 수술한 배가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으로 산후조리원을 나오는 그날까지 20일도 넘게 끙끙거리며 다녔다. 신기한 건 그랬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 혼자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던 고통이 그냥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별거 아니었단 생각이 든다. 처음 유리창 너머로 바라봤던 아이, 모유수유 시간에 처음 품에 안았던 아이, 산후조리원에서 원하는 대로 아이를 볼 수 있는 것에 한없이 기뻤던 일, 처음 집에 아기침대에 눕혔던 기쁨까지 생생한데 그 모든 일들과 고통들이 함께 했을 텐데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만 강하게 남았다.
아이의 백일이 될 때까지 아이가 하루하루 재주가 늘어가는 것에 큰 행복을 느끼다 보니 벌써 백일이 지났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동안 나의 어제와 오늘은 똑같은데 아이의 어제와 오늘은 달라서 눈부시게 자라나는 것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코로나19로 임신 기간에는 백신도 맞지 못해서 조심스러운 마음에 외출을 하지 않았고 그나마 후반엔 의지가 아닌 백신 패스가 없어 식당 하나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집과 회사만 다녔다. 출산휴가를 냈던 1월부터 5월은 병원 말고는 집 밖을 나서는 일이 없어 현관문 밖으로 나선 일은 열 번도 되지 않는다. 집 안에서 아이만 바라보는 것이 답답한 날도 있었지만 버틸 수 있었던 건 하루하루 자라나는 아이를 보는 일이 생각보다 더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보다 이렇게 집안에서 엄마만 바라보는 아이가 답답할까 그게 걱정되었다. 그리고 이게 나와 아이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양가의 첫 손주라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데 전염병 시국만 아니면 문턱이 닳아져라 오셨을 양가 부모님의 발목도 붙잡았다. 사진과 동영상 영상통화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묻어났다.
백일을 기념하고 싶지만 아직은 불안함을 안고 가족모임을 가질 수 없어서 백일잔치는 하지 않으려 했으나, 백일 동안 손주 맘껏 안아보지도 못하고 지척에서 그리워하기만 한 양가 부모님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백일잔치를 강행하기로 했다. 양가의 가족이 모이는 열명도 안 되는 소모임에도 그동안 쪼그라 붙은 내 마음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하지만 첫 손주 백일반지 해주고 싶은 마음 예쁜 사진 하나 남기고 싶은 마음을 하나하나 작지 않았고 나에게도 백일 간의 육아를 기념하고 우리 아이 이만큼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보내 그 합이 백일이 되었음을 자랑하고 싶었다.
눈이 부셨던 아이의 백일과 나의 백일은 달랐다. 산후조리가 잘못되었는지 아이가 너무 예뻐서 자주 안아줘서 인지 손목이며 팔목 무릎 발목 허리에 골반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거기다 모유수유 중이라 병원은커녕 파스 한 장 없이 버틴 날들이 많았다. 초반에는 고관절에 염증이 생겨서 다리를 디딜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통증이 와서 절뚝거리다가 주저앉기도 했다. 그때도 나보다 아기가 다칠까 다급했고 허물어져가는 몸 때문에 아이를 안아주지 못할까 무서웠다. 손목과 어깨가 말썽일 때도 이러다 안아주지 못할 정도로 아파지면 어쩌나 하고 아이를 눕혀놓고 걱정했다. 땀이 없는 체질이지만 산후라 진땀이 부쩍부쩍 나서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졌는데 아이의 얼굴에 태열이 하나 둘 올라오면 집안 온도를 낮췄다. '엄마가 우선이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를 본다.' 쉬운 말이지만 정작 엄마가 되니 나는 없어지고 아이만 한 없이 커져버렸다. 남편은 그런 날 안쓰러워하고 답답해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50일쯤 되었을 때 아이를 낳기 전 몸무게에서 13kg이 빠졌다. 아이를 가지고 체중이 많이 늘지 않았었기 때문에 임신 전보다 훨씬 더 빠진 건데, 조리를 잘하고 운동으로 건강하게 뺀 것이 아니라 전혀 건강하지 못한 몰골이 되었다. 임신 전에는 아무리 살이 쪄도 배가 나오지는 않았는데 벌어진 복직근 때문인지 볼록한 배는 아직 임신한 것 마냥 볼록하게 늘어져있다. 거기에 백일이 가까워오니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머리를 감을 때도 한 움큼 말릴 때도 한 움큼 걸어 다닐 때마다 지나온 자리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빠진다. 내 머리가 빠지는 것도 신경 쓰이지만 머리카락이 아이 입에 들어갈까 옷에 묻어날까 걱정으로 청소기와 돌돌이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나의 백일은 아이 가지기 전 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런데 다 상관없을 만큼 아이가 예쁘다. 아침에 눈 뜨고 저녁에 감을 때까지 이 말랑하고 보드라운 아이를 품에 맘껏 안을 수 있는 게 큰 행복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행복이다. 가끔 이렇게까지 행복한 적이 있었나 되새겨봐도 아무래도 지금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백일이 가까워지니 아이가 감정표현이 풍부해졌는데 소리 내어 웃는 일이 많아졌다. 이 모든 일을 기록하고 담아두고 싶지만 쉽지 않다. 틈틈이 글로 남기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지금도 아이가 자는 시간 핸드폰을 글을 쓰고 있다. 한두 시간이면 쓸 글을 이틀간 한줄한줄 기록했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남겨두고 싶다. 언젠가 이것들이 잊힐 때 숨겨놓은 타임캡슐처럼 이 시간으로 나를 돌려놓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고되지만 큰 행복으로 버텨냈던 백일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행복이 올지 기대되고 벅차다.
지워져 가는 고통을 되새기고 점점 커져가는 행복을 놓치기 싫어 기록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