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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May 19. 2022

층간소음 쪽지가 문 앞에 붙었다.


아랫집입니다. 얼마 전부터 안방 쪽에서 새벽 1~2시 웅웅~ 하는 진동소리가 들려 잠에서 자주 깹니다. 또 이른 새벽에도 있고요. 혹시 댁에서 일어나는 소음이라면 자제 부탁합니다. 아니라면 미안합니다.


그런데 정말 아니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안방은 나와 아기만 쓰고 있고 아기가 저녁 11시쯤 잠들어 아침 11시쯤 깬다. 중간중간 깨서 수유를 하긴 하지만 모유수유 직수라서 소음이 날만 한 게 없다. 아기는 100일이 지나서 밤에 잘 보채지 않고 울지도 않는다.


나는 소음에 둔감하고 다행히 남편도 아이도 소음에 둔감한 편이다.


우리 윗집은 어르신 내외가 사시는데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손주들이 오는지 우당탕탕 소란스럽다. 가끔은 '발뒤꿈치 괜찮나?' 걱정이 될 정도 일 때도 있지만 아파트에 살면서 일일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면 피곤해지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윗 윗집은 피아노가 있는데 처음에 뚱땅거리고 잘 치지 못하더니 이제 제법 한곡은 매끄럽게 치는 정도가 됐다. 가끔 주말 아침부터 칠 때는 '아이고 오늘은 일찍 일어났나 보네. 얼마나 치고 싶었을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아랫집이 소음에 유난히 민감해서 우리 윗집이 쿵쾅거려도 우리집으로 인터폰이 울린다는 것이다. 아이가 있기 전에부터 우리 내외는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 싫어 복도에 매트를 깔고 바닥이 두꺼운 실내화를 신고 살고 있다.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오면 사정을 말씀드렸다.


"저희는 신혼부부라 아직 아이도 없고 게다가 지금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영화를 보는 중입니다. 무슨 소음으로 연락을 주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소음으로 그렇게 불편하시면 우리 집에 방문해서 확인하고 가셔도 좋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 세대 윗집은 조금 쿵쾅거리긴 하지만 바로 밑 우리 세대는 참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정히 거슬리시면 우리 윗집에 연락하시라고 전해주세요." 고 했다.


그렇게 여러 번 신경전을 했던 세대는 이사를 가고 다른 집이 이사 오고 나서는 인터폰이 한동안 조용했다. 그러다가 문득 붙은 쪽지에 다시 한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나마 양해를 구하는 쪽지이기에 답장을 써서 전달했다.


소음으로 인해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하지만 저희 집은 진동을 일으킬만한 가전(안마의자나 러닝머신 같은)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시간은 막 백일이 된 아이와 제가 자는 시간이라 안방 쪽에서 그런 소음이 날 이유도 없습니다. 다른 층이거나 다른 라인에서 나는 소음인 것 같습니다.


남편이 간밤에 드릴 소리 같은 웅웅 거리는 소리가 새벽에 났다고 했지만 나는 깊이 잠들었는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잠들었다. 우리 집이 아니고 윗집이라고 꼭 쓰라고 옆에서 이야기하는데 내가 들은 것이 아니고 또 괜한 싸움으로 번질까 봐 그만두었다. 내가 아니니 그냥 내가 아닌 것까지만 적어서 전달했다.


오해가 사라진 건지 더 이상 쪽지는 붙지 않았다. 그런데 윗집에서 소음이 들릴 때마다 예민해진다. 거슬리지 않던 소음이 점점 거슬린다. 한동안 이러다 말겠지만 그냥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예민함은 전염되나 보다.

난 그냥 둔한 채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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