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속에 억울이가 태어났다

by 호치담

담담이 찬장에서 사탕을 꺼내 먹겠다며 아기 의자를 찬장 앞에 가져다 놨다. 그리고 더 작은 의자를 그 위에 올리고 있었다.


"담담아! 위험해! 의자 위에 의자를 올리는 건 위험해! 쿵 떨어지면 머리나 팔다리가 다칠 수 있어! 안 되는 거야!"


그러자 조막만 한 손으로 분주하게 위에 올렸던 의자를 원래 있던 자리도 돌려놓았다. 그러고서는 또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엄마! 그런데 몰라서 그런 건데 왜 혼내요? 왜 나쁘게 말해요?"


띵- 하고 정신이 번뜩 차려졌다.


"아하! 엄마가 나쁘게 말했구나. 미안해. 그런데 위험해서 놀라서 큰소리로 말한 거지 혼낸 건 아니야. 담담이가 엄마말 들어줘서 고마워!"


하고 꼭 안아주고 귓가에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저녁준비로 내가 분주하자 담담이는 여기저기 탐색하며 돌아다니다가 껍질이 있는 마카다미아를 발견했다. 마카다미아는 그 틈새로 열쇠같이 생긴 쇠를 넣어 비틀어 까서 먹어야 하는데 아기 소근육에 좋은 거 같아서 종종 아이랑 앉아 마카다미아 까기 대결을 했다. 그 마카다미아를 까는 쇠를 '열쇠'라고 알려주었는데 오랜만에 발견한 마카다미아를 보더니 담담이 나에게 열쇠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저녁 준비하느라 분주했지만 아이가 떼부리지 않고 부탁을 하면 들어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의 열쇠를 찾아주기 위해서 찬장을 열었다. 그 앞에는 아까 미처 치우지 못한 담담이의 작은 의자가 있었고 담담이는 열쇠를 찾고 있는 나를 의자에 앉아서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이 없어 미처 아이가 의자에 앉아있다는 것을, 그게 위험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열쇠를 찾아 찬장을 이곳저곳 뒤지던 와중에 참치캔이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너무 놀라 떨어진 곳에 시선을 옮기니 아이가 앉아있었다. 아이의 안위를 살폈고 다행히 아이의 옆으로 비껴서 떨어졌지만 크게 다칠 수 있었던 상황이라 너무 놀라서 아이를 채근하듯 언성이 높아졌다.


"담담아. 이리 나와봐. 위험했다. 이리 나와봐 봐."


담담이도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 혹시 보지 못한 상처가 있을까 아이를 살피는데 담담이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담담이는 그냥 앉아있기만 했는데…"


더 길게 말을 잇지 못하고 뿌앵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어찌나 엉엉 우는지 눈물이 사방팔방 흘렀다. 나도 우는 담담이를 안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해 담담아 엄마가…"


"담담이는 그냥 앉아 있기만 했는데 왜 나쁘게 말해요. 왜 혼내요!"


울음이 진정되자 잔뜩 억울했던 심정을 담아 나에게 쏘아붙였다.


"아이코 미안해 담담아 엄마가 너무 놀래서 그래서 그랬어. 미안해. 억울했지. 담담이는 앉아있기만 했는데. 담담이는 잘못한게 하나도 없어 엄마가 잘못한 거야. 미안해. 담담아. 엄마가 너무 놀라서 그랬어."


담담이는 정말 잘못한 게 없었다. 애초에 아이를 뒤로 물러서게 해야 했고, 미처 치우지 못한 의자도 치워두었어야 했다. 높은 위치에서 떨어지는 물건은 가벼운 물건이라도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있으니까 멀리 물렸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 건 내 잘못이었고 부주의였다. 아이가 다치치 않아 다행이지 정말이지 아찔한 상황이었기에 그런 상황에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괜찮아요. 그런데 담담이는 정말 앉아있기만 했어."


담담이는 "미안해"와 "괜찮아"가 세트다. 항상 본인도 미안하다고 말하고서는 대답이 없으면 "'괜찮아'라고 해야지!" 다그친다. 그리고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상황이 오면 항상 "괜찮아"라고 말해준다. 그 세트 같은 괜찮다는 말이 오늘따라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또 진정시켜 준다.


아이가 진정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잘못한 게 없는데 혼나서 마음이 속상했지. 그게 억울한 마음이야."

"담담이 속상했어. 엄마가 나쁘게 말해서. 혼내서."

"미안해 엄마가. 우리 담담이 억울하게 해서. 엄마가 조심할게. 담담이도 엄마가 물건을 꺼내고 있을 때는 그 아래 서 있으면 안 돼. 알았지. 엄마 많이 놀랬거든. 담담이 다칠까 봐."

"알겠어요."


어쩌다 이렇게 미숙한 엄마에게 이렇게 현명한 딸이 와주었을까. 신기하다.


늘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지만 늘 괜찮다고 말해주는 딸이 있어서 안심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자꾸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아서 소소한 실수에도 "우유를 흘려서 미안해요." "물을 쏟아서 미안해요." 미안하다고 사과를 잘하는 딸이 되었나 싶기도 하다. 늘 괜찮다고 말해주지만 가끔 괜찮다고 말하는 걸 잊으면 본인이 와서 "괜찮다고 해야지!" 알려주고 간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반성하는 의미에서 또 아이의 마음에 억울이라는 감정이 생겨난 게 신기해서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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