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마음이 왜 이래요?

4살 아이와 옷 전쟁, 서열전쟁

by 호치담

아이와 매일 아침 전쟁이다. 패션에 눈 뜬 4살이라 옷을 입혀놓으면 마음에 안 든다고 어깃장을 놓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워킹맘이기에 자는 아이를 아침에 거의 포장하듯 옷을 입혀 출근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체력이 좋아지면서 아침에 깨어나기 시작한 게 갈등의 시작이었다. 한번 이 옷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갈아입혀줘야 출발할 수 있었다. 출근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갈아입혀주는게 빨랐으나, 오히려 시간이 없을 때가 문제였다. 아이는 갈아입혀줘야 출발을 하고 늦은 나는 아이를 설득해서 집을 나서야 했다.


"엄마가 늦어서 담담이가 엄마 한 번만 봐줘." 하고 사정도 해보고

"이거 안 입을 거면 담담이는 집에 있어 엄마 혼자 회사 갈게." 하고 협박도 해보고


하지만 아침부터 아이의 기분이 상한 채로 시작하는 게 싫어서 대부분 사정하는 편이었다. 협박은 울고 불고 결국은 바둥바둥 거리는 아이를 카시트에 억지로 태우기까지 그 과정에서 둘다 하얗게 지쳐버리곤 했다. 그래도 사정하면 끝까지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수긍해주곤 했다. 종종 옷이 마음에 안 들어도 "엄마 지금 늦었어요?"라고 먼저 물어주기도 했다. "엄마 많이 늦어서 회사 가면 혼날지도 몰라." 하고 말하면 "어쩔 수 없이 이거 입어야겠다."하고 쿨하게 넘어가 주기도 했다.


그렇게 아침에 실랑이를 하다 보니 지각이 다반사고 간신히 출근시간에 겨우 도착하며 허덕이며 하루를 시작하니 피로도가 가중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방법을 바꿨다. 전날 미리 아이와 상의해서 옷을 고르는 것이다. 이것도 이것 나름 고충이 있었는데 옷장에 옷을 전부 꺼내서 하나하나 품평을 하는데 펼쳐주고 다시 개어놓는 것도 일이었다. 그날도 입히고 싶은 옷이 있긴 하지만 옷을 보여주고 싫다고 하면 다음 후보를, 또 다음 후보를 꺼내어 놓으면 서너 벌째 넘어가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첫 번째 보여준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아까는 이 옷이 정말 입기 싫었는데 지금은 이 옷이 좋겠어요. 엄마 내 마음이 왜 이래요? 아까는 싫었는데 지금은 좋아요."


그러고는 쿨하게 옷 고르기를 종료했다. 그 순간 오히려 자기의 마음이 왜 이러냐고 묻는 말에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게 담담히 마음이 왜 그럴까? 마음속에 우주가 있어서 그런가?"


정말이지 내 작은 아이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환절기는 엄마가 입히고 싶은 옷과 아이가 입고 싶은 옷이 달라지는 시기다. 특히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가 어렵다. 얇고 가벼운 반팔을 입다가 긴팔로 넘어갈 때 옷 입기 싫어하는 아이와 전쟁을 치러야 하고, 긴팔에서 점퍼를 걸쳐야 하는 시기가 오면 답답해서 싫다고 하는 아이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아이들은 생애에서 가장 활동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옷을 입어 활동이 둔해지는 걸 특히나 싫어하는 것 같다. 다 이해는 하지만 추워지는 시기에 옷을 따뜻하게 입히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 매번 충돌한다. 그래서 계절이 바뀌면 이전 옷들을 보이지 않게 치워두어야 한다. 가을에 한여름 원피스를 꺼내 입겠다고 하거나 한겨울에 홑겹의 가을 바지를 입겠다고 하는 건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전쟁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담담이는 예쁜 옷을 입었을 때 점퍼를 걸치는 걸 정말 싫어했다. 자기 예쁜 모습이 점퍼에 가려지는 게 정말 싫은 듯했다. 점퍼를 입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설득해서 옷을 입히는 게 일이었다.


"엄마는 담담이가 다치는 거 아픈 거는 화를 낼 수밖에 없다고 했지? 그런데 지금 추운데 점퍼 입지 않으면 감기 걸리고 아플지도 몰라. 그거는 둘 중에 담담이 가 아플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화를 낼 수밖에 없어. 그래도 고집부릴 거야? 엄마가 티라노사우르스처럼 화를 내야 할까?"


"알겠어요. 입을게요."


담담이는 엄마가 '다칠 수도 있는 일, 아플 수도 있는 일'에는 단호하게 행동하는 걸 알기 때문에 저 두 가지 중에 하나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면 고집을 꺾고 엄마의 말을 들어줬다. 대부분 담담이에게 져주는 엄마지만 저 두 가지 범주에 속하는 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단호하게 행동했다. 그런 과정이 험난했으나 그래도 지금에 와서는 잘했다고 싶어지는 순간이 바로 이런 순간이다.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하는데 또 점퍼를 입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길래 잠시 멈춰 오늘 날씨가 어땠는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어린이집 선생님이 담담이를 설득해서 "밖은 추우니까 점퍼를 입는 게 좋겠다. 담담이 점퍼 정말 멋진 걸?" 하며 아이를 다독여 주셨는데 그리고는 살짝 귀띔을 해주셨다. "오늘 하루 종일 하원하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이 앞에서 점퍼를 입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답니다. 결국은 못 입히고 가신 분들도 있었어요." 하셔서 같이 눈을 맞추며 웃었다. 4세의와의 패션 전쟁은 나만의 일은 아니었나보다.


담담이는 할머니가 사주신 또각또각 소리가 나는 공주 구두를 좋아하는데 겨울에 접어드니 아이 발이 시릴까 봐 되도록 운동화나 부츠를 신도록 제안해 보지만 끝까지 저항할 때가 있다. 나는 유년의 기억에 까만 에나멜 구두를 신고 싶었던 아이의 마음이 남아있는 터라 신겠다고 하면 신겨야지 하는 무른 마음이 들때가 더 많지만, 아이의 활동성을 더 생각하는 아빠는 아이의 고집을 꺾고 부츠나 운동화를 신겼다. 아빠가 안된다고 하는 것은 끝내 들어주지 않는 것을 아는 아이는 아빠가 부츠를 신겨주면 순순히 신으며 부츠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


"아빠 부츠를 신으니까 정말 편하고 불빛이 들어와서 예뻐요."


그날은 아빠를 쉬게 해 주려고 내가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날이었는데, 아빠 앞에서는 그렇게 수긍하고 순순히 부츠를 신던 아이가 아빠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차에 타자 마자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말수가 줄어들었다.


"담담이는 구두가 신고 싶었는데 구두를 신지 못해서 정말 속상해요."


약속 시간이 늦은 터라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그런 상황을 설명해 주고 차를 출발했는데,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눈물을 글썽이며 속상해했다. 나는 담담히 기분을 좀 풀어주고 싶어서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노래를 틀어줄까?"

"나는 구두를 못 신어서 속상해서 노래 듣고 싶지 않아요."

"그럼 엄마랑 거기 가서 담담히 새 구두 살까?"

"집에 구두가 두 개나 있어서 새 구두는 살 수 없어요."

"담담아 아까 아빠가 부츠 신겨줄 때는 편하고 예쁘다고 했잖아."

"그런데 나는 구두가 신고 싶었어요."

"엄마는 담담이 가 그렇게 말해서 부츠 신어도 괜찮은 줄 알았어."

"아니에요. 나는 구두가 신고 싶었어요."

"이미 출발해서 지금 구두를 가지러 갈 수는 없어. 담담이 가 아빠한테 구두 신고 싶다고 다시 말했어야지."

"엄마가 담담이 마음 알고 구두를 챙겼어야지!"


결국은 구두를 챙기지 않은 엄마의 잘못이었다. 화가 날 법도 한데 저렇게까지 구두가 신고 싶은데 그저 아빠 앞에서는 순순히 신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터졌다.


"엄마가 집에 가서 아빠 등짝을 때려줄게. 그리고 다음부터는 엄마가 구두를 따로 챙겨 올게. 그리고 오늘 밤에 아빠랑 외출할 때는 구두를 신자. 어때?"


"네. 그게 좋겠어요."


그렇게 30분여의 구두 신고 싶어서 속상한 담담이 달래주기는 끝났다. 담담이는 본인이 엄마를 이길 수 있다는 걸 알고, 엄마가 아빠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아빠가 담담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 가족은 약간 가위바위보 같은 구조인데 그래서 셋이 모이면 약자도 강자도 없다. 그래서 자신과 엄마 둘만 있는 1:1 상황에서만 강해지는 담담인데, 나는 그저 담담이가 평생 만만하게 기댈 수 있는 져주는 사람이 되어주기로 했으므로 크게 억울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아빠 앞에서는 포기도 빠르고 의연하게 말해놓고 엄마한테는 속상함을 다 풀어놓는 상황이 올지 몰랐다. 아빠랑 있으면 순하고 말 잘 듣는 아이인데, 엄마랑 있으면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아이가 된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마음속 우주가 궁금한 내가 만만한 쪽을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끝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도 아이의 마음이 바뀌고 정교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쁨이 있다.


'너의 마음을 들려줘서 고마워. 너조차 모르는 너의 마음을 알 수 있어서 행복해.'


매일이 옷전쟁이고 신발전쟁이지만 그 전쟁 속에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행복하다. 전쟁 속에서 아이의 취향을 읽고 아이의 마음을 읽다 보면 또 어떤 날은 100점짜리 시험지처럼 아이가 만족하는 날도 있다.여전히 무궁무진한 아이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조금씩 내어주는 마음이 보석처럼 반짝여 내 마음속에 빛을 밝혀주는 것 같다.


엄마는 너의 마음이 늘 궁금하단다,

언젠가 이렇게 재잘재잘 너의 마음을 털어놓는 시절을 그리워하는 날도 오겠지.

언젠가 네가 너의 마음을 엄마한테 들려주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각오는 하고 있어.

하지만 너의 속상함을 나에게 가장 편하게 들려주던 지금처럼,

네가 가장 속상한 날에 너의 곁에서 너의 속상함을 나눠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늘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사회생활 2년 차의 말솜씨